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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김씨] 김기석(金箕錫)
자는 성극(聖極), 호는 정무(貞武). 1876년(고종 13) 어영대장(御營大將)이 되고, 이어 총융사(摠戎使)․통제사(統制使)․강화부 유수(江華府留守) 등을 지냈으며, 1884년(고종 21) 친군영(親軍營)이 설치되자 우영사(右營使)․별영사(別營使)․해방영사(海防營使) 등을 역임했다.
[광산김씨] 김정기(金政基)
기두(箕斗)의 현손(玄孫). 1725년(영조 1) 문과(文科)에 급제, 대사간(大司諫)을 지냈다.
[광산김씨] 김화중(金和中)
수석(壽錫)의 손자. 1754년(영조 30)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兵科)로 급제, 대사간(大司諫)을 지냈다.
[광산김씨] 김낙용(金洛龍)
호는 만취당(晩翠堂). 1801년(순조 1)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을 지냈다.
[광산김씨] 김기균(金箕均)
성은(性溵)의 현손(玄孫). 고종 때 육군 부위(陸軍副尉)로 의병(義兵)을 일으켰다.
[광산김씨] 김의표(金儀表)
호는 정암(正巖). 1837년(헌종 3)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兵科)로 급제, 제주 목사(濟州牧使)를 지냈다.
[광산김씨] 김재경(金在敬)
호는 졸재(拙齋). 순조 때 우부승지(右副承旨)․경주 부윤(慶州府尹)을 역임하고, 효행으로서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광산김씨] 김재순(金在珣)
곤보(坤寶)의 7대손. 고종 때 내장원경(內藏院卿)을 지냈다.
[광산김씨] 김재청(金在淸)
1770 (영조 46) ~ ? 자는 덕여(德汝), 호는 향포(香圃), 시호는 정간(貞簡), 광은 부위(光恩副尉) 기성(箕性)의 아들. 1801년(순조 1)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兵科)로 급제, 부수찬(副修撰)이 되고, 내외직을 거쳐 이조 판서(吏曹判書), 1830년(순조 30) 원접사(遠接使), 1835(헌종 1) 병조판서 (兵曹判書)를 지내고, 18...
[광산김씨] 김재삼(金在三)
호는 기백재(己百齋). 정조 때 음보(陰補)로 의주 부윤(義州府尹)․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를 거쳐 형조 참판(刑曹參判)을 역임했다.
[광산김씨] 김재현(金在顯)
시호는 효문(孝文). 1858년(철종 9)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지내고 봉조하(奉朝賀)에 올랐다.
[광산김씨] 김재원(金在元)
상정(相定)의 손자. 1816년(순조 16)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兵科)로 급제하여 의주 부윤(義州府尹)을 지냈다.
[광산김씨] 김재전(金在田)
1830년(순조 30)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하고 교리(校理)를 거쳐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이르렀다.
[광산김씨] 김재성(金在成)
기은(箕殷)의 아들. 1816년(순조 16)에 생원(生員)이 되고,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지냈다.
[광산김씨] 김재헌(金在獻)
기은(箕殷)의 조카. 1840년(헌종 6) 벼슬길에 올라 여러 주군(州郡)을 다스린 뒤, 고종 때 공조 참판(工曹參判)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