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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김씨] 김복태(金福澤)
? ~ (영조 16)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만기(萬基)의 손자, 숙종비 인경왕후(仁敬王后)의 조카, 1721년(경종 1)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노론 사대신(老論四大臣)의 일파로 지목되어 1723년(경종 3) 거제(巨濟)에 유배, 1724년(경종 4)에 풀려나와 영회전 참봉(永徽殿參奉)이 되었다.
[광산김씨] 김조택(金祖澤)
호는 평재(平齋), 민택(民澤)의 아우. 1721년(경종 1) 정시문과(庭試文科문과)에 을과(乙科)로 급제,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를 지내고, 1722년(경종 2) 신임사화(辛壬士禍)에 연루, 남해(南海)에 유배되었다가 1725년(영조1)에 방환(坊還)되었다.
[광산김씨] 김응복(金應福)
상렴(尙廉)의 증손(曾孫). 1721년(경종 1)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兵科)로 급제, 승지(承旨)를 지냈다.
[광산김씨] 김상익(金相翊)
진항(鎭恒)의 손자. 1795년(영조 35)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이조 참의(吏曹參議)․부제학(副提學)을 역임했다.
[광산김씨] 김화택(金和澤)
호는 묵와(黙窩), 익경(益炅)의 증손. 1753년(영조 29)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兵科)로 급제, 1755년(영조 51) 부제학(副提學)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광산김씨] 김상면(金相勉)
호는 평암(平庵). 1822년(순조 22)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형조참의(刑曹參議)를 지냈다.
[광산김씨] 김상경(金相庚)
상무(尙戊)의 아들. 1777년(정조 1) 선공감역(繕工監役)이 되고, 뒤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광산김씨] 김원택(金元澤)
호는 사구재(四九齋), 시호는 효정(孝靖), 문택(文澤)의 아우. 한성판윤(漢城判尹)을 거쳐 판결사(判決事)에 이르고 영의정(領議政)에 증직되었다.
[광산김씨] 김우철(金遇喆)
호는 입지당(入志堂). 1719년(숙종 45)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兵科)로 합격, 형조참의(刑曹參議)를 지냈다.
[광산김씨] 김계환(金啓煥)
호는 소암(素岩). 1706(숙종 32)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형조참판(刑曹參判)을 지냈다.
[광산김씨] 김순택(金純澤)
자는 유문(孺文), 호는 옥계(玉溪). 부사(府使)를 지냈다.
[광산김씨] 김상복(金相福)
1714 (숙종 40) ~ 1782 (정조 6) 자는 중수(仲叟). 호는 직하(稷下)․자연(自然), 시호는 문헌(文獻), 사계(沙溪) 장생(長生)의 후손, 1740년(영조 16)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을과(乙科)로 합격, 검열(檢閱)․응교(應敎)을 거쳐 1722년(영조 48) 영의정(領議政)에 오르고 후에 영중추부(領中樞府事)로 전임되었다.
[광산김씨] 김상정(金尙挺)
1689년 (숙종 15) ~ 1774 (영조 50) 자는 여화(汝和), 호는 기기재(棄棄齋), 용겸(金用兼)의 아들. 1756년(영조 32)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었다.
[광산김씨] 김하재(金夏材)
초재(楚材)의 아우. 정조 때 문과(文科)에 급제.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지내고, 1784년(정조 8) 이재학(李在學)의 무고로 화(禍)를 입었으나 1907년(융희 1)에 신원(伸寃)되었다.
[광산김씨] 김상우(金相宇)
상렴(相濂)의 6대손. 순조 대 무과(武科)에 급제, 한성 판윤(漢城判尹)을 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