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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김씨] 김진규(金鎭圭)
1658 (효종9) ~ 1716 (숙종 42) 자는 달보(達甫), 호는 죽천(竹泉), 시호는 문정(文淸),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 만기(萬基)의 아들. 인경왕후(仁敬王后)의 오빠. 송시열(宋詩烈)의 문인. 1686년(숙종 12)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장원, 이조 좌랑(吏曹佐郞)을 지내다가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남인(南人)이 집권하자...
[광산김씨] 김진동(金鎭東)
익경(益炅)의 손자. 1721년(경종 1) 참봉(參奉)을 거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냈으며, 경학(經學)과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광산김씨] 김진옥(金鎭玉)
자는 백온(伯溫), 호는 유하(柳下)․온재(韞齋), 판서(判書) 익희(益熙)의 손자, 만균(萬均)의 아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 음보(蔭補)로 기용된 뒤 1714년(숙종 40) 청주 목사(淸州牧使), 1718년(숙종 44) 수원 부사(水原府使), 1725년(영조 1) 승지(承旨)를 지내 고, 1727년(영조 3) 강원도 관찰사가 되었다.
[광산김씨] 김진상(金鎭商)
1684 (숙종 10) ~ 1755 (영조 31) 자는 여익(汝翼), 호는 퇴어(退漁), 참판(參判) 익훈(益勳)의 손자. 1712년(숙종 38)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兵科)로 급제, 설서(說書)․수찬(修撰)․지평(持平)을 지냈다. 1722년(경종 2) 신임사화(辛壬士禍)로 무산(茂山)에 유배되었다가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이조 정랑(吏曹正郞)으로...
[광산김씨] 김담(金 土覃)
1678 (숙종 4) ~ ? 자는 사관(士寬), 우화(遇華)의 아들. 1713년(숙종 39)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兵科)로 급제, 사관(史官)을 지낸 뒤, 1717년(숙종 43) 중시문과 (中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했다. 1721년(경종 1) 장령으로 신임사화(申壬士禍)에 연루, 파직되었다가 1725년(영조 1) 복직 되고 1742년(영조 18)...
[광산김씨] 김동준(金東俊)
1685 (숙종 11) ~ ? 자는 백겸(伯兼), 호는 적암(適庵), 교리(校理) 인(인)의 손자. 1721년(경종 1) 문과(文科)에급제, 영동 현감(永同縣監)이 되어 시폐(時弊)를 제거하여 치적(治積)을 쌓았다. 1728년(영조 4) 무신역도(戊申逆度 : 이인우의 난)에 계략으로서 적을 토벌하여 그 공으로 원종일 등훈(原從一等勳)에 책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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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김씨] 김시휘(金時輝)
호는 우옹(愚翁). 1662년(현종 3)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兵科)로 급제, 황주 목사(黃州牧使)를 지냈다.
[광산김씨] 김용갑(金龍甲)
여강(汝剛호)의 5대손. 1754년(영조 30)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兵科)로 급제, 호조 정랑(戶曹正郞)을 지냈다.
[광산김씨] 김춘경(金春景)
자는 이화(而華), 참봉(參奉) 난(蘭)의 아들 공주(公州)에서 호가(扈駕)의 공을 세워 진무원종훈(振武原從勳)에 책록되었다.
[광산김씨] 김춘택(金春澤)
1670 (현종 11) ~ 1717 (숙종 43) 자는 백우(伯雨), 호는 북헌(北軒), 시호는 충문(忠文),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만기(萬基)의 손자, 호조 판서(戶曹判書) 진귀(鎭龜)의 아들. 서인(西人)으로서 1689년(숙종 1)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그 집안이 화를 입어 그도 여러 번 유배되었으나 갑술옥사(甲戌獄事 : 1694)로 풀려나왔고, 서...
[광산김씨] 김보택(金普澤)
1672 (현종 13) ~ 1717 (숙종 43) 자는 중시(仲施), 호는 척재(惕齋), 시호는 익헌(翼獻), 숙종(肅宗)의 장인,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만기(萬基)의 손자, 호조판서(戶曹判書) 진귀(鎭龜)이아들. 1695년(숙종 21) 별시문과(別時文科)에 병과(兵科)로 급제, 검열(檢閱)․정언(正言)․문학(文學)․보덕(輔德)등을 거쳐, 1715년(숙종...
[광산김씨] 김운택(金運澤)
1673 (현종 14) ~ 1722 (경종 2) 자는 중행(仲行), 호는 백운헌(白雲軒), 시호는 충정(忠貞), 판서 진귀(鎭龜)의 아들. 1699년 (숙종 25) 사마시(司馬試), 1704년(숙종 30) 춘당대문과(春塘臺文科)에 병과(兵科)로 급제, 부제학(副提學)․호조참판(戶曹參判) 등을 지냈다.
[광산김씨] 김민택(金民澤)
1678 (숙종 4) ~ 1722 (경종 2) 자는 치중(致中), 호는 죽헌(竹軒). 지평(持平)․정언(正言)․수찬(修撰) 등을 역임하였다. 김제겸(金濟謙)․조성복(趙聖復)과 함께 신임(辛壬)의 삼학사(三學士)라 일컬었다.
[광산김씨] 김양택(金陽澤)
1712 (숙종 38) ~ 1777 (정조 1) 자는 사서(士舒), 호는 건암(建庵), 시호는 문간(文簡), 판서 진규(鎭圭)의 아들. 1743년(영조 19)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병과(兵科)로 급제, 헌납(獻納)․부제학(副提學)을 거쳐 원손사부(元孫師傅)․대사성(大司成)․우빈객(右賓客)․영의정을 역임했다.
[광산김씨] 김용택(金龍澤)
? ~ 1722 (경종 2) 자는 덕우(德雨), 호는 고송헌(孤松軒), 대제학(大提學) 만중(萬重)의 손자, 이이명(李頤命)의 사위. 1722년(경종 2) 신임사화(申壬士禍) 대 포의(布衣)로서 목호룡(睦虎龍)의 상변(上變)으로 역모(逆謀)의 혐의를 받고 고문치사 되었다. 뒤에 신원(伸寃)되고 집의(執義)에 추증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