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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김씨] 김운해(金運海)
자는 형원(亨遠), 호는 벽류정(碧流亭), 경남(景男)의 아들. 무과(武科)에 급제하였으나 광해군의 폭정을 당하여 벼슬에 뜻을 두지 아니하였다가 인조반정(仁祖反正)에 훈공을 세워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뒤에 충청 조방장을 거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를 역임하였다.
[광산김씨] 김치원(金致謜)
자는 제화(濟和), 호는 수진당(守眞堂), 광부(光符)의 아들. 훈련첨정(訓練僉正)을 역임했다.
[광산김씨] 김온(金 韞)
자는 군왕(君王). 1585년(선조 18) 문과(文科)에 합격, 지평(持平)을 지냈다.
[광산김씨] 김해수(金海壽)
자는 심원(深源), 응천(應天)의 아들. 사직서 참봉(社稷署參奉)을 거쳐 아산 현감(牙山縣監)을 지냈다.
[광산김씨] 김질간(金質幹)
자는 문오(文吾), 호는 쌍오(雙梧), 성균박사(成均博士) 응귀(應龜)의 아들. 1601년(선조 34)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지냈다.
[광산김씨] 김민선(金敏善)
1542 (중종 37) ~ 1592 (선조 25) 자는 달부(達夫). 1572년(선조 5)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집의(執義)․사간(司諫)을 지내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인천 부사(仁川府使)로 재직중 순절(殉節)하였다.
[광산김씨] 김준성(金俊成)
호는 금계(錦溪), 정언(廷彦)의 손자. 1576년(선조 9) 문과(文科)에 급제, 한성판관(漢城判官)을 지냈다.
[광산김씨] 김익청(金益淸)
겸광(謙光)의 증손. 1583년(선조 16)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연천 군수(連川郡守)를 지냈다.
[광산김씨] 김종제(金宗悌)
강(綱)의 아들. 문과(文科)에 급제,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을 지냈다.
[광산김씨] 김대덕(金大德)
1577 (선조 10) ~ 1639 (인조 17) 자는 득지(得之), 호는 소봉(蘇峰)․이안당(易安堂),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 원록(元祿)의 아들, 감찰(監察) 원상에게 입양(入養). 1601년(선조 34)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로 등용된 뒤, 검열(檢閱) 등을 지내고 인조반정(仁祖反正 : 1623) 후 사...
[광산김씨] 김진(金 搢)
1585년 (선조 18) ~ ? 자기 기중(記仲), 호는 추담(秋潭)․훈재(訓齋)․영재(詠齋), 부사(府使) 윤국(潤國)의 아들.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청환직(淸宦職)을거쳐 1612년(광해군 4) 설서(說書)․검열(檢閱)을 지내고, 이어 봉교(奉敎)․정언(正言) 등을 지냈다.
[광산김씨] 김질충(金質忠)
자는 직부(直夫). 1548년(명종 3)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호당(湖堂)에 뽑히고, 호조 좌랑(戶曹佐郞)을 지냈다.
[광산김씨] 김질충(金質忠)
응귀(應龜)의 아들. 1585년(선조 18)에 문과(文科)에 급제, 평양 서윤(平壤庶尹)을 지냈다
[광산김씨] 김태정(金泰廷)
자는 형언(亨彦), 찰방(察訪) 백간(伯幹)의 아들. 퇴계(退溪)의 문인. 1569년(선조 2)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한 후 형조 참판(刑曹參判)을 지냈다.
[광산김씨] 김인(金 王忍)
1633 (인조 11) ~ 1678 (숙종 4) 자는 중휘(仲輝), 호는 우헌. 1660년(현종 1)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장령(掌令)․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