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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김씨] 김재(金 滓)
1408년(태종 8)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지내고, 순충명량보리(純忠明亮輔理) 좌명공신(佐命功臣)에 책록되었다.
[광산김씨] 김한로(金漢老)
1367 (공민왕 16) ~ ? 양녕대군(讓寧大君)의 장인. 1383년(우와 9) 문과(文科)에 급제, 예조 판서(禮曹判書)․대사헌(大司憲)․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병조 판서(兵曹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뒤에 좌의정(左議政)에 추증(追贈)되고 광산군(光山君)에 추봉되었다
[광산김씨] 김약채(金若采)
광성군(光城君) 정(鼎)의 아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 웅왕 때 좌사의 대부(左司議大夫)를 지냈고, 조선 건국 후 좌산기상시(左散騎常時)․대사헌․충청도 도관찰사(忠淸道都觀察使)를 역임했다.
[광산김씨] 김약항(金若恒)
자는 구경(久卿), 호는 척약재(惕若齋), 대광(大匡) 정(鼎)의 아들. 1371년(공민왕 20) 문과(文科)에 급제, 전교 준부(典校注簿)가 되고, 이어 여러 관직을 거쳐 예의 총랑(禮儀摠郞)에 이르렀으며, 조선이 건국되자 대사성을 역임했다.
[광산김씨] 김승길(金承吉)
호는 사은(沙隱), 판서(判書) 인우(仁雨)의 아들. 함종 현령(咸從縣令)을 지내다가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간 절신(節臣)이다.
[광산김씨] 김약시(金若時)
시호는 충정(忠定), 약항(若恒)의 아우. 1383년(우왕 9) 문과에 급제, 진현관 직제학(進賢冠直提學)이 되었고, 고려가 망하자 황주(黃州)에 은거, 벼슬에 나가지 않고 끝까지 절개를 지킨 두문동(杜門洞) 72현 중의 한 사람이다. 조선 순조 때 이조 판서(吏曹判 書)․대제학(大提學)에 추증(追贈) 되었다.
[광산김씨] 김석재(金碩材)
자는 진덕재(進德齋), 호는 덕재(德齋), 영(英)의 아들. 호조 참판(戶曹參判), 의금부사(義禁府事)를 역임하고,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추증(追贈)되었다.
[광산김씨] 김소(金 遡)
자는 원지(原之), 석재(碩材)의 손자. 1401년(태종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합격, 사성(司成)을 거쳐 이조 참판(吏曹參判)․보문관 제학(寶文館提學)을 역임했다.
[광산김씨] 김간(金 盰)
첨(瞻)의 아우. 조선 태조 때 공조 판서(工曹判書)․홍문관 제학(弘文館提學)을 역임했다.
[광산김씨] 김문발(金文發)
호는 부용정. 1394년(태조 3) 전라 수군절제사(全羅水軍節制使)로서 왜선을 겨파하였고, 이어 경기․전라․충청․경상 수군절제사(水軍節制使)를 역임하였다.
[광산김씨] 김맹권(金孟權)
호는 만취당(晩翠堂), 감찰(監察) 중로(中老)의 아들. 보령(保寧) 출신. 일찌기 진사(進士)가 되고, 문명이 높아 집현전 학사(集賢殿學士)로 뽑혔다.
[광산김씨] 김구경(金久冏)
1407년 중시문과(重試文科)에 급제, 호군(護軍)을 거쳐 집현전 직학사(集賢殿直學士)를 지냈다.
[광산김씨] 김숙로(金叔老)
성우(成雨)의 손자. 세종 때 문과(文科)에 급제, 자헌대부(資憲大夫)․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광산김씨] 김치공(金致恭)
호는 만달정(晩達亭), 재(滓)의 조카. 세조 때 문과(文科)에 급제,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지냈다.
[광산김씨] 김매경(金邁卿)
조선 때 예조 판서(禮曹判書)․판내자시사(判內資寺事)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