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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舊)] 김질(金 質)
1496 (연산군 2) ~ 1561 (명종 16) 자는 문소(文素), 호는 영모당(永慕堂), 복중(福重)의 아들. 지극한 효자로 부친상을 당하자, 제사 때 꿩이 부엌에 날아들어 이를 제물로 썼다 하며, 48세에 모친상을 당하여 여막(廬幕)에 사는데 밤새 한 길이 넘게 눈이 내렸으나 여막 둘레만 내리지 않아 이에 탄복한 사람들이 그곳을 제청산(祭廳山)이라 불...
[안동김씨(舊)] 김연수(金延壽)
자는 이용(而庸). 1483년(성종 14) 춘장문과(春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이조 정랑(吏曹正郞)을 지냈다.
[안동김씨(舊)] 김의동(金義童)
시호(諡號)는 길안군(吉安君). 조선 때에 목사(牧使)를 지냈다.
[안동김씨(舊)] 김성동(金誠童)
자는 명보(明甫). 1492년(성종 23)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부평 부사(富平府使)에 이르렀고, 대사헌(大司憲)에 추증(追贈)되었다.
[안동김씨(舊)] 김광수(金光粹)
1468 (세조 13) ~ 1563 (명종 18) 자는 국화(國華), 호는 송은(松隱). 1501년(연산군 7) 진사(進士)가 되었으나 더 이상 과거 볼 뜻이 없어 고향 의성(義城)에서 시가(詩歌)로써 청빈하게 생애를 보냈다.
[안동김씨(舊)] 김공량(金公亮)
자는 필지(弼之), 호는 양곡(楊谷). 조선 때 대제학(大提學)을 역임했다.
[안동김씨(舊)] 김공석(金公奭)
자는 주경(周卿). 1507년(중종 2) 무과에 급제, 호조(戶曹)․공조(工曹)․형조(刑曹)의 참의(參議)를 거쳐 강릉 부사(江陵府使), 포도대장(捕盜大將),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등을 역임하고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이르럿다.
[안동김씨(舊)] 김공망(金公望)
1482 (성종 13) ~ ? 자는 위수(渭叟), 성(城)의 아들. 1506년(중종 1)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정과(丁科)로 급제, 양사(兩司)의 벼슬을 거쳐 목사(牧使)에 올랐으며,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다.
[안동김씨(舊)] 김공예(金公藝)
자는 중아(仲雅). 1513년(중종 8)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 보덕(輔德)․전한(典翰)․직제학(直提學)․동부승지(同副承旨) 등을 역임하과, 예조 참의(禮曹參議)에 이르렀다.
[안동김씨(舊)] 김식(金 湜)
자는 자심(子深), 호는 치은(治隱). 1506년(중종 1)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로서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장령(掌令) 등을 역임했다.
[안동김씨(舊)] 김백내(金白匂)
자는 중보(重寶), 호는 십경(十景). 성균관 생원(成均館生員)에서 통사랑(通仕郞)․훈도(訓導)․직장(直長) 등을 지냈으며, 중종반정(中宗反正)에 공이 있어 정국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 1등이 되었고, 마량진 수군첨절제사(馬梁鎭水軍僉節制使)에 올랐다.
[안동김씨(舊)] 김인명(金麟明)
자는 백소(伯昭) 1507(중종 2)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목사(牧使)를 지냈다.
[안동김씨(舊)] 김희수(金希壽)
1475 (성종 6) ~ 1527 (중종 22) 자는 몽정(夢禎), 호는 유연재(悠然齋), 자행(自行)의 손자. 1507년(중종 2) 참봉(參奉)으로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정언(正言)이 되고, 지평(持平)․장령(掌令)을 거쳐 1523년 도승지(都承旨)에 승진, 1527년 경상도 관찰사를 지냈다.
[안동김씨(舊)] 김인상(金麟祥)
자는 상지(祥之). 1513년(중종 8)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병조 정랑(兵曹正郞)겸 춘추관 기주관(春秋館記注官)을 지냈다.
[안동김씨(舊)] 김익(金 釴)
1484 (성종 15) ~ ? 자는 군거(君擧), 언홍(彦弘)의 아들. 조광조(趙光祖)의 문인. 1519년(중종 14) 현량과(賢良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정언이 되었고 1545년(인종 즉위) 전생서 주부(典牲暑主簿)를 거쳐 용담 현령(龍潭縣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