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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정씨,경주정씨시조,지백호,경주정씨유래,경주정씨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우리나라 정씨(鄭氏)의 시원(始源)을 이룬 경주정씨(慶州鄭氏)는 진한국(辰韓國) 사로(斯蘆)의 6촌(村) 중 취산진 지촌장(嘴山診支村長) 지백호(智伯虎)를 시조(始祖)로 받들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동경지(東京誌)」에 의하면, 지백호(智伯虎)는 기원전 117년(한무제 원수 6) 경주 화산(慶州花山)에 강림(降臨)하여 부족...
고성정씨 시조(固城鄭氏),정가물(鄭可勿),고성정씨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고성정씨(固城鄭氏)의 시조(始祖)는 고려(高麗) 때 사람으로 누대(累代)에 걸쳐 철성(鐵城)에 토착세거(土着世居)한 호족(豪族)의 후손 정가물(鄭可勿)이다.
그의 후손들은 선조(先祖)의 세거지(世居地)인 고성(固城)에 살면서 본관(本貫)을 고성(固城)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고성(固城)은 경상남도(慶尙南道) 남부 중앙에...
광주정씨시조(光州鄭氏) ,정신호(鄭臣扈),광주정씨조상인물,광산정씨
광주정씨시조
광주․광산정씨(光州鄭氏)의 시조(始祖) 정신호(鄭臣扈)는 고려 충선왕(忠宣王)과 충숙왕조(忠肅王朝)에 걸쳐 상호군(上護軍)을 지내고 봉은사 진전직(奉恩寺眞殿直)으로 삼중대광 문하찬성사(三重大匡門下贊成事)에 추봉되었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본관(本貫)을 광주(光州)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본관의 유래
광주(光州)...
금성정씨시조(錦城鄭氏),정성(鄭盛),금성정씨조상인물,정충신(鄭忠信)
시조 및 본관의 유래
금성(錦城)은 전라남도(全羅南道) 중서부(中西部)에 위치한 시(市)로서, 본래 백제(百濟)의 발라군(發羅郡)을 통일신라(統一新羅)에 와서 경덕왕(景德王)이 금성(錦城 : 일명 금산)으로 고쳤으며,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나주(羅州)로 개칭하였다.
1011년(고려 현종 2) 거란(契丹)의 2차 침입 때 현종(顯...
김포정씨시조(金浦鄭氏),정응문(鄭應文),김포정씨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김포정씨(金浦鄭氏)의 시조 정응문(鄭應文)은 김포(金浦)사람으로 고려조(高麗朝)에서 어사대 중승(御史臺中丞)을 지냈다.「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의하면 그는 고려 인종(仁宗) 때 동남해 안무사(東南海按撫使)가 되어 남해안(南海岸) 일대에 봉기한 도적을 진압할 때 좌성(佐成) 등 해적 828명이 귀순(歸順)해 오자, 합천(陜川) 삼기...
나주정씨(羅州鄭氏),나주정씨시조,정해(鄭諧),나주정씨유래,나주정씨조상인물
나주정씨시조 및 나주정씨유래(본관)
나주정씨(羅州鄭氏)의 시조(始祖)는 고려(高麗)에서 벼슬을 지냈고 군기감(軍器監)에 추증된 정해(鄭諧)이다.
그의 후손들은 나주(羅州)에 정착 세거(定着世居)하면서 호족(豪族)을 이루어 해(諧)를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본관(本貫)을 나주(羅州)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나주(羅州)는 전라남도(全羅南道)에 ...
낭야정씨시조(瑯琊鄭氏),정선갑(鄭先甲)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낭야정씨(瑯琊鄭氏)는 중국(中國)에서 귀화해 온 성씨(姓氏)로 명(明)나라 세종(世宗 : 제12대 황제, 재위기간 : 1522~1566) 때 문연각 태학사(文淵閣太學士)를 지낸 정문겸(鄭文謙)의 증손 정선갑(鄭先甲)이 봉림대군(鳳林大君 : 후에 효종이 됨)을 배종(陪從)하고 동래(東來)하여 조선(朝鮮)에 귀화한 것이 시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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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산궁씨] 궁제(弓 濟)
고려(高麗) 때 우문감(右門監)을 지냈다.
[토산궁씨] 궁인걸(弓仁傑)
조선(朝鮮) 때 예빈시첨정(禮賓寺僉正)을 역임하였다.
[토산궁씨] 궁원일(弓元一)
조선(朝鮮) 때 관찰사(觀察使)를 지냈다.
[토산궁씨] 궁석암(弓石岩)
조선 때 어사(御使)를 역임하였다.
[토산궁씨] 궁화(躬 化)
한말(韓末)에 병무 대장(兵務大將)으로 지냈다.
[토산궁씨] 궁달초(弓達楚)
한말(韓末)에 독립운동(獨立運動)가였다.
[안동권씨] 권적(權 適)
1094 (선종 11) ~ 1146 (인종 24) 자는 득정(得正), 검교 태자첨사(檢校太子詹事) 덕여(德輿)의 손자. 청평산(淸平山) 문주사(文珠寺)에서 이자현(李資玄)과 교유, 학문을 닦았다.
예종 때 유학생으로 송나라에 가서 태학(太學)에 입학, 이어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1117년(예종 12) 귀국했다.
벼슬은 국자 좨주(國子祭酒)․한림 학사...
[안동권씨] 권수평(權守平)
? ~ 1250 (고종 37) 일찍이 대정(隊正) 벼슬로 가난하게 살때 낭중(郎中) 복장한(卜章漢)이 억울하게 유배된 뒤 토지를 경작하여 살다가 그가 석방되어 돌아오자 토지와 함께 임대료를 주어 재산 쟁탈이 다반사로 행해지던 때 미풍을 남겼다.
또한 당시 권문 자제들의 선망의 대상인 견룡(牽龍) 벼슬에 임명 되었으나 가난함을 이유로 이를 사양했으며, 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