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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거전씨(八莒全氏)
팔거전씨(八莒全氏)
고려시대 인물
전원태(全元台) (1275~1308) : 충렬왕조에 예의부윤을 역임했는데 원나라 합단군이 침입하자 이를 물리친 공으로 팔거군(八莒君)에 피봉(皮封)되었다. 후손들이 팔거(八莒: 지금 칠곡(漆谷)의 고호(古號))를 관향(貫鄕)으로 분관지(分貫地)로 삼았다.
전대(全 代) (1345~1348?) : 자(子)는 경선(敬先)...
성산전씨(星山全氏)
성산전씨(星山全氏)
고려시대 인물
전흥(全 興) (1214~1259) : 문과(文科)에 등과(登科)한 후 좌우(左右) 헌납(獻納)을 거처 봉인대부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했다. 몽고(蒙古)의 살례탑이 침입(侵入)할 때 공(功)을 세워 대광(大匡)에 승진(陞進)하고 성산군(星山君)에 피봉(皮封)되었다. 성산(星山)은 현재의 성주(星州))로 후손(後孫)들...
황간전씨(黃澗全氏)
황간전씨(黃澗全氏)
고려시대 인물
전익(全 翼) (1214~1259) : 문과(文科)에 등과(登科)한 후(後) 여러 관직(官職)을 거쳐 형부(刑部)상서(尙書)에 이른다. 몽고군 살례탑이 침입할 때 형(兄) 전흥(全興)과 함께 적을 토평(討平)한 공(功)으로 황간군(黃澗君)으로 피봉(皮封)되었다. 후손(後孫)들은 황간(黃澗)을 관향(貫鄕)으로 분관지(分貫...
계림전씨(鷄林全氏)
계림전씨(鷄林全氏)
고려시대 인물
전공식(全公植) (1231~1271) : 고려(高麗) 고종조(高宗朝)에 몽고군(蒙古軍)이 침략해 왔을 때 안겸사로서 병마절도사인 형(兄) 공렬(公烈)과 함께 전주(全州) 고부 지경(地境)인 고란사에서 몽고군을 토평(討平)한 공(功)으로 계림군(鷄林君)에 피봉(皮封)되었다. 계림(鷄林)은 지금의 경주(慶州)로 후손(後孫)...
옥천전씨(沃川全氏),옥천전씨시조,전유,옥천전씨유래,옥천전씨조상인물
옥천전씨시조 및 옥천전씨유래(본관)
옥천 전씨(玉川全氏)의 관조(貫祖) 전유(全侑)는 환성군(歡城君) 전 섭(全 聶 : 전씨의 도시조)의 27세손(世孫)으로 고려(高麗) 충숙왕(忠肅王) 때 밀직부사(密直副使)․판도판서(版圖判書)․상호군(上護軍) 등을 지내고 나라에 공(功)을 세워 관성(管城 : 옥천의 옛 지명)군(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정선 전씨(...
옥산전씨(玉山全氏)
옥산전씨(玉山全氏)
고려시대 인물
전영령(全永齡) (1198~ )고려(高麗) 신종조(神宗朝) 신호위(神號衛)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하고 국가에 기여한 공이 있어 옥산군(玉山君)으로 피봉(皮封)되었다. 옥산(玉山)은 지금의 경산(慶山)으로 후손(後孫)들이 옥산(玉山)을 관향(貫鄕)으로 분관지(分貫地)로 삼았다.
전공량(全公亮) : 전사대 전중시를 역임했...
용궁전씨(龍宮全氏),용궁전씨시조,전방숙(全邦淑),용궁전씨조상인물
고려시대 인물
전방숙(全邦淑) : 용궁전씨 시조, (1252~1308) 문과(文科)에 등과(登科)하여 한림학사(翰林學士) 등 여러 관직을 거처 문하시랑평장사에 이르고 용성(龍城) 부원군(府院君)에 피봉(皮封)되었다. 시호(諡號)는 문정(文貞)이다. 용성(龍城)은 용궁(龍宮)의 구호(舊號)로 후손(後孫)들이 용성(龍城) 축산(竺山)을 관향으로 분관지(分貫地...
죽산전씨(竹山全氏)
죽산전씨(竹山全氏)
고려시대 인물
전한(全 僩) (1214~1240) 문과(文科)에 등과(登科)하여 여러 관직(官職)을 거쳐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이르렀고 몽고군이 침략했을 때 조숙창 장군과 함께 성신진을 방어하는데 공을 세워 좌리공신에 책록되고 죽산군(竹山君)에 피봉(皮封)되었다. 죽산은 안성군의 속면(屬面)으로 후손들은 관향(貫鄕)을 죽산으로 분관지...
[평해구씨] 구차숭(丘次崇)
조선(朝鮮) 때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역임하였다.
[평해구씨] 구종직(丘從直)
1424 (세종 6) ~ 1477 (성종 8) 자(字)는 정보(正甫), 시호(諡號)는 안장(安長), 판서 천우(天祐)의 증손, 양선(揚善)의 아들. 1444년(세종 26)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학유(學諭)․영동현감(永同縣監)․좌헌납(左獻納)․낙안군수(樂安郡守)․사성(司成) 등을 역임, 1462년(세조 7) 고성군수(固城郡守)로 나갔다가 직강을 거쳐 ...
[평해구씨] 구치곤(丘致崑)
1464년(세조 9) 춘시문과(春試文科)에 정과(丁科)로 급제, 사옹원첨정(司饔院僉正)․장령(掌令)․집의(執義)를 거쳐 1490년(성종 21) 강릉부사(江陵府使)․충주목사(忠州牧使)에 이르렀다. 이어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이조참의(吏曹參議)․좌부승지(左部承 旨)․대사헌(大司憲)을 역임, 후에 한성좌윤(漢城左尹)을 지냈다.
[평해구씨] 구치강(丘致崗)
1453년(단종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 판관(判官)․병조좌랑(兵曹佐郞)․주서(注書)를 거쳐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에 이르렀다. 예조참의(禮曹參議)에 추증(追贈)되었다.
[평해구씨] 구달손(丘達孫)
1465년(세조 11) 춘시문과(春試文科)에 정과(丁科)로 급제, 응교(應敎)․직제학(直提學) 겸 지제교(知制敎)를 거쳐 수찬(修撰)을 지내고, 1476년(성종 7) 시독관(試讀官)․시강관(侍講官)을 역임하였다.
[평해구씨] 구숙손(丘夙孫)
1475년(성종 6) 문과에 갑과(甲科)로 급제 이어 헌납(獻納)․지평(持平)을 거쳐 집의(執義)에 이르렀다. 집의로 있을 때 국정(國政)을 바로잡는 일 등에 대하여 많은 계(啓)를 올렸으며, 벼슬은 이조정랑(吏曹正郞)․사재정(司宰正)을 역임했다.
[평해구씨] 구숙남(丘夙男)
조선(朝鮮) 때 찰방(察訪)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