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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정씨(淸州鄭氏),청주정씨시조,정극경(鄭克卿)청주정씨조상인물
청주정씨(淸州鄭氏)의 연원(淵源)
시조는 고려 중엽 인종 때 중랑장인 극경(克卿)이 제1세조이며, 지금으로부터 약 900년 전에 기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청주정씨의 기록은 1217년(고려 고종4년) 제3세조인 대장군 의(顗)의 큰 공적과 절의가 고려사에 처음으로 나타나며, 5세조 장경공(章敬公 諱 瑎) 이후로 덕업과 문장이 역사 기록에 끊이지 않았으며...
초계정씨(草溪鄭氏),초계정씨시조,정배걸(鄭倍傑),초계정씨유래,초계정씨조상인물
초계정씨시조 및 초계정씨유래
초계(草溪)는 경상남도(慶尙南道) 합천군(陜川郡)에 속해 있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신라(新羅)의 초팔혜현(草八兮縣)인데, 경덕왕(景德王) 때 팔계(八溪)로 고쳐서 강양군(江陽郡 : 합천)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가 고려(高麗) 때는 초계(草溪)로 하였고 1018년(현종 9) 합주(陜州)에 속했다. 명종(明宗) 때 감무(監務)...
풍기정씨시조(豊基鄭氏),정의(鄭誼),풍기정씨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풍기정씨(豊基鄭氏)는 시조(始祖) 정의(鄭 誼)가 고려조(高麗朝)에 영정감무(永定監務)를 역임하였으므로 관적(貫籍)을 영정(永定)으로 하였다가, 그의 아들 기(琪)가 문하시랑(門下侍郞)으로 공(功)을 세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녹훈(錄勳)되고 풍기군(豊基郡)에 봉(封)해졌으므로 봉군(封君)된 읍호(邑號)인 풍기(豊基)를 본관(...
하동정씨,하동정씨시조,정도정,정응,정손위,하동정씨본관,하동정씨조상인물
하동정씨시조 및 하동정씨본관의 유래
하동(河東)은 경상남도(慶尙南道) 최서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신라 다사군(多沙郡)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 때 하동(河東)으로 고쳤고 고려 현종(顯宗) 때 남해현(南海縣)을 병합하여 하남현(河南縣)이라 하다가 후에 분리하였고 1702년(숙종 28) 섬강(蟾江)을 관문(關門)으로 삼고 진주(晋州)의 악양(嶽陽) ․ ...
함평정씨 시조(咸平鄭氏),정언겸(鄭彦謙),함평정씨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함평정씨(咸平鄭氏)는 고려 인종(仁宗)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한 정언겸(鄭彦謙)을 시조(始祖)로 한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언겸이 1126년(인종 4) 이자겸(李資謙)의 난(亂)이 일어나자 모평(牟平)에 은거(隱居)하여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함평(咸平)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함평(咸平)은 전라남도(全羅南道) ...
해남정씨(海南鄭氏),정공유(鄭公裕)
해남정씨는 2000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전국에 368가구 1.223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된 문중으로 조선조에 발간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나타난 성본으로 시조는 생원 정공유(鄭公裕)이다. 이 성본의 연원은 밝혀 지지 않고 족보와 세계(世系), 집성촌, 인물, 사적 등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해주정씨(海州鄭氏) 시조는 고려 신종 때 전법정랑 중현대부 전객서령 시중평장사를 지낸 정숙(鄭肅)이다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해주정씨(海州鄭氏)의 시조(始祖)는 고려 신종(神宗) 때 전법정랑(典法正郞) 중현대부 전객서령(中顯大夫 典客署令) 시중평장사(侍中平章事)를 지낸 정 숙(鄭 肅)이다. 그러나 숙(肅)의 선계(先系)는 문헌(文獻)이 실전(失傳)되어 정확히는 상고(詳考)할 수 없고, 다만 그의 조상(祖上)이 해주(海州) 수양산(首陽山) 밑에서 누대(累代)...
칠원제씨시조(漆原諸氏),제갈영(諸葛嬰),제갈홍(諸葛泓),제갈영(諸葛瀅),칠원제씨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제씨(諸氏)는 본래 제갈씨(諸葛氏)에서 분관(分貫)된 성씨(姓氏)로 전(傳)한다. 「칠원제씨세보(漆原諸氏世譜)」에 의하면 칠원제씨(漆原諸氏)의 원조(遠祖)는 제갈영(諸葛嬰)으로 34세손 제갈 홍(諸葛泓)과 제갈 영(諸葛瀅) 형제 대(代)에서 복성(復姓)을 각각 한 자씩 나누어 쓰기로 하여 형(兄)인 홍(泓)은 제씨(諸氏)로 낭야군(瑯...
[안동권씨] 권한유(權漢有)
고려조에 정승(政丞)을 지냈다.
[안동권씨] 권자형(權子衡)
고려(高麗) 공민왕 때 홍건 적(紅巾賊) 토벌 때 병마련사(兵馬練使)로서 공(功)을 세워 방십리(方十里)를 사패지(賜牌地)로 받았다.
[안동권씨] 권숙(權 肅)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 후(煦)의 후손. 1394년(태조3) 고려(高麗)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두문동(杜門洞)에 은거(隱居) 하다가 양촌공(陽村公 : 권근)의 상주(尙奏)로 복성(復姓)되었으며, 이조 참판(吏曹參判)과 공안부윤(恭安府尹)을 지냈고, 호조 판서(戶曹 判書)에 증직(贈職)되었다.
[안동권씨] 권엄(權 嚴)
초휘(初諱)는 완부(玩富), 자는 식부(植夫). 고려에서 두문동(杜門洞)에 은거(隱居)하였으며 음보(蔭補)로 집의(執義)를 지냈다.
[안동권씨] 권현(權 鉉)
형(衡)의 아들. 고려 때 광복군(廣福君)에 봉해졌다.
[안동권씨] 권호(權 鎬)
호는 정재(靜齋). 고려(高麗) 때 익대공신(翊戴功臣)에 오르고, 판원덕부사(判原德府事)를 지냈다.
[안동권씨] 권주(權 鑄)
호는 규헌(葵軒), 조의 동생. 봉익대부(奉翊大夫)와 상의밀직제학(商議密直提學)․도의사사(都議司事)를 거쳐 진현관제학(進賢館提學)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