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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정씨] 정대방(鄭大方)
1565(명종 20)~1613(광해군 5)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권제(權濟)․최간(崔簡)․조지산 (曺芝山)․정우복(鄭愚伏) 등 군자(君子) 31인(人)이 달성(達成) 팔공산(八空山) 상암(上菴)에서 회맹(會盟)하여 공을 세웠고,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사촌 형(兄)인 대영(大英)과 함께 화왕산성(火旺山城)을 방어하는데 공을 세웠다....
[경주정씨] 정창문(鄭昌文)
1593(선조 26)~? 자(字)는 장헌(章獻), 호(號)는 성암(省菴), 윤근(允謹)의 아들. 부친(父親) 윤근(允謹)이 임진왜란 때 김천일(金千鎰) 등과 함께 진주(晋州) 전투에서 순절하자, 부친의 원한을 마음속에 새겨 정유재란(丁酉 再亂) 때 10촌 형(兄)인 원길(元吉)과 함께 출전하여 남원(南原) 율치(栗峙)에서 적군 수십 명을 사로잡아 죽이고 정...
[경주정씨] 정호(鄭 浩)
1550(명종 5)~1595(선조 28) 자(字)는 원중(遠中), 호(號)는 안곡(安谷). 1570년(선조 3) 무과에 급제한 후 좌부장(左部長)을 지내고,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이순신(李舜臣) 휘하에서 돌격대 대장(突擊隊大將)으로 당포(唐布)․노량(露梁)․발포(鉢浦) 전투에서 적선(敵船) 300여 척을 격파하는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
[경주정씨] 정응룡(鄭應龍)
자(字)는 이견(而見), 호(號)는 동강(東岡). 1592년(선조 25) 무과에 급제한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홍의장군(紅衣將軍)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전력분투하다 1604년(선조 37) 순절(殉節)하였다.
그후 훈련원 봉사(訓鍊院奉事)에 추증되고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병조참판(兵曹參判)에 가증(加增)되었으며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추서(追叙)되었...
[경주정씨] 정구(鄭 構)
자(字)는 긍보(肯甫), 호(號)는 영모암(永慕庵). 조식(趙植)의 문인. 조선(朝鮮) 선조(宣祖) 때 음성(陰城)․산음 현감(山陰縣監)을 역임하였다.
[경주정씨] 정인남(鄭仁男)
조선조(朝鮮朝)에 사옹원 봉사(司甕院奉事)를 역임하고,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추증되었다.
[경주정씨] 정신남(鄭信男)
1572(선조 5)~1670(현종 11) 1612년(광해군 4)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한 후 통훈대부(通訓大夫)로 보령 현감(保寧縣監)을 역임하였으나 재임 중 모함으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경주정씨] 정순석(鄭順錫)
1546년(명종 1) 문과에 급제한 후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냈다.
[경주정씨] 정승훈(鄭承勳)
조선 때 자헌대부(資憲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경주정씨] 정흔(鄭 昕)
1578(선조 11)~1626(인조 4) 발(撥)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보국숭록대부(輔國崇錄大夫)로 호위대장(扈衛大將)을 거쳐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조정에서 복수청(復讐廳)을 창설하여 전국의 장정(壯丁)을 모집하니, 공(公)은 나라에 은혜를 보답하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모집에 응하여 가산(家産)을 털어 군수(軍需)에 힘...
[경주정씨] 정득교(鄭得蛟)
1593(선조 26)~1652(효종 3) 조선 광해군(光海君)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용양위 부사과(龍驤衛副司果)를 역임하고,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장악원정(掌樂院正)에 추증되었다.
[경주정씨] 정봉남(鄭鳳男)
신잡(申磼)의 문인. 1591년(선조 24) 진사(進士)에 합격된 후 율봉 찰방(栗峰察訪)을 역임하였다.
[경주정씨] 정황남(鄭凰男)
신잡(申 磼)의 문인. 조선조(朝鮮朝)에 은일(隱逸)로 선공감영(繕工監役)에 천거(薦擧)되었다.
[경주정씨] 정공청(鄭公淸)
자(字)는 수백(守伯), 시호(諡號)는 충의(忠義).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진도 군수(珍島郡守)에 역임하였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부자(父子)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안강(安康)․경주(慶州)․울산(蔚山)․동래(東來)․태천(態川)․부산(釜山) 등지에서 많은 왜적을 물리쳐 공을 세웠다.
[경주정씨] 정윤성(鄭胤成)
자(字)는 원술(元述), 호(號)는 양성당(養性堂). 조선(朝鮮) 때 학행(學行)으로 천거(薦擧)도어 부호군(副護軍)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