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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전씨] 전광훈(田光祥)
1722(경종 2)~1776(영조 52) 자(字)는 양경(陽卿), 통어사(統御使) 운상(雲祥)의 아들. 1750년(영조 26) 사마시 (司馬試)를 거쳐 1753년 무과(武科)에 급제, 통정대부(通政大夫)․선전관 내금장(宣傳官內禁將) 등을 역임한 후 1758년 선천 방어사(宣川防禦使)를 지냈다. 1762년 창원 부사(昌原府使)로 나가 백성들이 흉년으로 굶주림...
[담양전씨] 전재경(田在敬)
조선(朝鮮) 때 정헌대부에 올라 용양위 대호군(龍壤衛大護軍)을 역임하였다.
[담양전씨] 전귀성(田貴成)
1804(순조 4)~1891(고종 28) 자(字)는 성일(成一), 호(號)는 가정(稼亭)․천석(泉石), 치덕(致德)의 아들. 숭정대부(崇政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했다. 학문이 깊어 인근 사림의 추앙을 받았다.
[담양전씨] 전시우(田時雨)
통덕랑(通德郞) 윤추(潤秋)의 아들. 1832년(순조 32)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좌승지(左承旨)를 지냈다.
[담양전씨] 전안택(田安澤)
자(字)는 안택(安宅), 유추 (有鄒)의 아들. 조선 때 가정대부(嘉靖大夫)에 올라 호조 참판(戶曹參判)․오위도총부 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을 역임였다.
[담양전씨] 전익성(田益聖)
자(字)는 치삼(致三), 재현(在賢)의 아들. 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고 1888년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올라 용양위 대호군(龍驤衛大護軍)으로 치사(致仕)하였다.
[순창조씨] 조완(趙 琓)
조선(朝鮮) 때 호군(護軍)을 역임하였다.
[칠원제씨] 제명철(諸明喆)
1672(현종 13) 자(字)는 군보(君保), 호(號)는 읍취헌(挹翠軒). 좌의정(左議政) 조사석(趙師錫)의 문인으로 덕행과 학문이 뛰어나 많은 제자를 배출하엿고 또한 근천지(根天之) 효행으로 세인의 친판이 자자했다. 그의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추증(追贈)되고 정려(旌閭)가 하사되었다. 도지와 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경주정씨] 정인공(鄭仁恭)
조선 때 군수(郡守)를 거쳐 대사간(大司諫)에 이르렀고,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이조 참의(吏曹參議)에 증직되었다.
[충주지씨] 지경일(池景舟日)
(1590~?) 生員 未娶卒, 父 康翎縣監 成海
[함안조씨] 조여(趙 旅)
(1420~1489) 자 : 주옹(主翁) 호 : 어계(漁溪) 시호 : 정절(貞節) 단종 1년(1453년)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빼앗으니 함안으로 귀향(歸鄕)하여 종신(終身)토록 세상에 나가지도 않고 벼슬도 아니 하였다. 단종 복위 후 숙종 9년(1703년) 증가선대부이조참판(贈嘉善大夫吏曹參判), 정조 5년(1781년) 증 자헌대부이...
[칠원제씨] 제순복(諸順福)
1554~1597, 자(字)는 송대(松垈)이고 호(號)는 백강(百岡)이다.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 시(時)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규합(糾合)하여 부모님에게 하직하고 김해(金海)에 주둔하고 있는 왜적(倭賊)을 파영(破營)하고 양응원(襄應元) 강기경(姜起敬) 이몽구(李夢龜) 등과 합세(合勢)하여 영호남 일대에서 노략질하는 왜구(倭寇)를 시살(弑殺)하는...
[금성정씨] 정기홍(鄭基鴻)
자는 경로(敬魯) 공조참의
[경주정씨] 정진(鄭 震)
자(字)는 기원(器元), 호(號)는 운옹(耘翁).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 夫)로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지냈고 경운(耕耘)에 뜻이 있어 호(號)를 운옹(耘翁)이라 하였다. 정극인(丁克仁)과 동서(同婿) 사이로 함께 태인(泰人)으로 낙향하여 고현내(古縣內)를 개척하였다.
[금성정씨] 정상노(鄭相老)
자는 덕관(德寬) 부호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