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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정씨] 정윤근(鄭允謹)
자(字)는 신수(愼叟), 호(號)는 설송(雪松). 정언충(鄭彦忠)의 문인. 임진왜란 때 의병장군 김천일(金千鎰), 현령(縣令) 민여운(閔汝雲)과 함께 진주(晋州)에서 의병을 일으켜 역전 분투했으나 성(城)이 함락되어 순절(殉節)하였다. 그후 군기시 주부(軍器寺主簿)에 추증되었다.
[경주정씨] 정명호(鄭鳴濩)
자(字)는 아숙(雅叔), 호(號)는 삼우당(三友堂). 조선(朝鮮) 때 기자전 참봉(箕子殿參奉)을 지냈다.
[경주정씨] 정승복(鄭承復)
1520(중종 15)~1581(선조 14) 1555년(명종 10) 선전관(宣傳官)에 재임시 을묘왜변(乙卯倭變)이 일어나자 추자도(楸子島)에서 수차례 커다란 공을 세워 방백(方伯) 박충원(朴忠元)과 수사(水使) 최희효(崔希孝)의 장계(狀啓)로 함흥 판관(咸興判官)․함흥 진관 병마절제사(咸興鎭管兵馬節制使)를 역임하였다. 그후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정원 좌승지...
[경주정씨] 정유선(鄭惟善)
자(字)는 응지(應之). 1528년(중종 23) 문과(文科)에 급제한 후 가선 대부(嘉善大夫)로 경기도 관찰사(京畿道觀察使)를 역임하였다.
[경주정씨] 정명선(鄭明善)
1517(중종 12)~1566(명종 21) 1534년(중종 29) 진사 세마(進士洗馬)에 합격한 후 통정대부(通政大夫)로 한성부 서윤(漢城府庶尹)을 역임하였다.
[경주정씨] 정발(鄭 撥)
1553(명종 8)~1592(선조 25) 자(字)는 자고(子固), 호(號)는 백운(白雲), 시호(諡號)는 충장(忠壯), 군수(郡守) 명선(明善)의 아들. 1579년(선조 12) 무과(武科)에 급제, 선전관(宣傳官)이 되고 강섬(姜 暹)의 천거로 훈련원 부정(訓鍊院副正)에 특진되었다.
1592년 부산진 첨절제사(釜山鎭僉節制使)가 되어 이해 4월 임진왜란이 ...
[경주정씨] 정탁(鄭 擢)
1579년(선조 12)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후 황산도 찰방(黃山道察訪)을 역임하였다.
[경주정씨] 정백령(鄭栢齡)
1532(중종 27)~1601(선조 34) 조선 때 충좌위 대호군(忠佐衛大護軍)을 역임하였고, 뒤에 통정대부(通政大夫)․어모장군(禦侮將軍)에 추증되었다.
[경주정씨] 정사준(鄭思竣)
1553(명종 8)~? 자(子)는 근초(謹初), 호(號)는 성은(城隱). 조선 선조(宣祖) 때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선전관(宣傳官)이 되었고, 임진왜란(壬辰倭亂)때 이순신(李舜臣)을 도와 수차례에 걸쳐 대공(大功)을 세웠으며, 1599년(선조 32) 결성 현감(結成縣監)을 지낸 후 고향으로 돌아와 벼슬에 나가지 않고 은거생활을 하였다.
그 후 1812...
[경주정씨] 정사횡(鄭思竑)
자(字)는 여인(汝仁), 호(號)는 매헌(梅軒),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이순신(李舜臣)의 휘하로 들어가 노량 해전(露粱海戰)에서 공을 세워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연천(連川)․안음 현감(安陰縣監)을 역임하였고, 송덕비(頌德碑)가 세워졌다.
1801년(순조 1)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추증되었고, 1842년(헌종 8) 광주(...
[경주정씨] 정사정(鄭思靖)
1565(명종 20)~? 자(字)는 유강(幼康). 조선(朝鮮) 선조(宣祖) 때 무과에 합격한 후 봉사(奉事)를 지냈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이순신(李舜臣) 을 따라 전공을 세웠고, 형(兄) 사준(思竣)․사횡(思竑), 조카 빈과 더불어 곡식을 모아 왕에게 수송한 충절(忠節)로 은직(恩職)을 받았 다.
[경주정씨] 정사립(鄭思立)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통정대부(通正大夫)로 태인 현감(泰仁縣監)을 지냈다.
[경주정씨] 정빈(鄭 忄賓)
1566(명종 21)~1640(인조 18) 우산 안방준(安邦俊)의 문인. 임진왜란 때 숙부들을 따라 가동(家僮)을 거느리고 3백여 리에서 곡식을 왕(王)에게 전하니 충절(忠節)에 감복한 선조(宣祖)가 사온서봉사(司醞署奉事)에 임명하였다.
그 후 직산(稷山)․아산 현감(牙山縣監)을 역임하고, 1801년(순조 1)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
[경주정씨] 정노(鄭 魯)
자(字)는 치도(致道), 호(號)는 동곡(東谷). 조 식(趙 植)의 문인. 조선 때 음보(蔭補)로 보충찬위(補忠贊衛)에 이르렀다.
[경주정씨] 정대영(鄭大英)
1565(명종 20)~? 자(字)는 극화(克和), 호(號)는 매헌(梅軒).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곽재우(郭在祐)의 휘하에서 사촌 동생 대방(大方)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화왕산성(火旺山城)을 지키는 등 방어에 공이 많았다. 그 후 통정대부(通政大夫)로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