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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정씨] 정상겸(鄭尙謙)
조선조(朝鮮朝)에 예조 좌랑(禮曹左郞)을 지냈다.
[경주정씨] 정승빈(鄭升賓)
조선(朝鮮) 때 대사간(大司諫)을 역임하였다.
[경주정씨] 정선장(鄭瑄章)
조선에서 형조 좌랑(刑曹佐郞)을 지냈다.
[경주정씨] 정하경(鄭河慶)
자(字)는 만영(萬榮), 호(號)는 망와(望窩). 1669년(현종 10) 문과(文科)에 급제한 후 응교(應敎)․안렴사(按廉使)를 거쳐 형조참의(刑曹參議)․좌참찬(左參贊)에 이르렀다.
[경주정씨] 정상업(鄭相業)
자(字)는 지원(之元), 호(號)는 백당(栢當).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칠순(七旬)인 어머니의 병환이 위급하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먹여 3일이나 생명을 연장시켰으므로 향인(鄕人)이 효자라 칭송하였다.
[경주정씨] 정문례(鄭問禮)
자(字)는 화백(和伯). 조선조에 음보(蔭補)로 봉정대부(奉正大夫)에 올라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역임하였다.
[경주정씨] 정석도(鄭碩道)
시호(諡號)는 무양(武揚), 조선(朝鮮) 때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첨사(僉使)를 역임하였으며, 무양공신(武揚功臣)에 책록(策錄)되었다.
[경주정씨] 정이상(鄭爾尙)
백기(伯基)의 아들. 조선조(朝鮮朝)에 서부 참봉(西部參奉)을 지냈다.
[경주정씨] 정이량(鄭爾亮)
백기(伯基)의 아들. 송시열(宋詩烈)의 문인. 조봉대부(朝奉大夫)로 공릉 참봉(恭陵參奉)을 지냈다.
[경주정씨] 정이원(鄭爾援)
백기(伯基)의 아들.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수군 판관(水軍判官)을 지냈다.
[경주정씨] 정이회(鄭爾誨)
백기(伯基)의 아들.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수군 판관(水軍判官)을 지냈다.
[경주정씨] 정두일(鄭斗一)
1652(효종 3)~1738(영조 14) 자(字)는 천추(天樞), 호(號)는 수헌(睡軒). 선친(先親)의 뜻을 이어 받아 최초로 족보를 정리하고자 전국의 모든 종친(宗親)을 남원(南 原) 광한루(廣寒樓)에 모아 족회(族會)를 열고, 8도(道)에 통문(通文)을 발송하여 송광사(松廣寺)에서 제유사(諸有司)로 추대되어 3권의 보(譜)를 간행하였다.
[경주정씨] 정제규(鄭齊奎)
1674(현종 15)~1731(영조 7) 1693년(숙종 19) 통덕랑(通德郞)에 이어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경흥 도호부사(慶興都護府使)․해미 현감(海美縣監)을 거쳐 충무위 부호군(忠武衛副護軍)․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고, 1730년(영조 6) 무과에 급제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로 가덕진 수군첨절제사(加德鎭水軍僉節制使)를 지냈다.
[경주정씨] 정동악(鄭東岳)
1633(인조 11)~1689(숙종 15) 자(字)는 차산(次山), 호(號)는 죽당(竹堂). 허목(許穆)의 문인. 성균관 장의(成均館掌儀)에 천거되어 김천도(金泉道)․경양도 찰방(景陽道察訪)을 지냈다.
[경주정씨] 정숙(鄭 璹)
자(字)는 중기(重器), 호(號)는 성재(省齋). 조선 인조(仁祖) 때 종사랑(從仕郞)으로 의령 훈도(宜寧訓導)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