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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문씨] 문익주(文益周)
자(字)는 중욱(仲郁), 호(號)는 백련당(白蓮堂). 조선 때 효자(孝子)로 향민(鄕民)의 칭송을 받았다.
[남평문씨] 문홍운(文弘運)
자(字)는 여간(汝幹), 호(號)는 매촌(梅村). 1612년(광해군 4) 진사(進士)를 지내고,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창의(倡義)하여 원종훈(原從勳)에 책록되었다. 문장(文章)이 뛰어나고 행의(行義)가 독실해서 유림(儒林)의 추앙(推仰)을 받았다. 함천(陜川)의 임천서원(臨川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남평문씨] 문홍원(文弘遠)
자(字)는 모두헌(慕杜軒). 1603년(선조 36) 무과(武科)에 급제, 임해군(臨海君)이 역모죄로 정배당하자 내금위장(內禁衛將)으로서 궁내(宮內)의 경비를 맡아보다가 3개월 만에「부귀사(不歸詞)」를 짓고 고향에 돌아와 은거(隱居)하였다.
[남평문씨] 문경호(文景虎)
호(號)는 역양(嶧陽).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곽재우(郭再祐)와 더불어 창의(倡義)하였고, 찰방(察訪)을 지냈다.
[남평문씨] 문광복(文光福)
자(字)는 중수(仲授), 호(號)는 규헌(奎軒). 조선 명종(明宗) 때 진사(進士)가 되고 음보(蔭補)로 훈련원 습독관(訓鍊院習讀官)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아들 호섭(虎燮)과 함께 금산성(金山城) 싸움에 참가하여 왜적과 싸우다가 적의 화살에 맞아 아들과 함께 순사, 소식을 들은 처(妻) 김씨(金氏)와 자부(子婦)...
[남평문씨] 문상표(文尙彪)
호(號)는 호은(湖隱). 조선 때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를 지냈다.
[남평문씨] 문위세(文緯世)
1534(중종 29)~1600(선조 33) 자(字)는 숙장(叔章), 호(號)는 풍암(楓庵), 익점(益漸)의 9대손. 류희춘(柳希春)․이 황(李 滉)의 문인. 1567년(명종 22) 진사(進士)가 되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박광전(朴光前)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군량 조달 등으로 공을 세워 1595년 용담 현령(龍潭縣令)에 임명되었다. ...
[남평문씨] 문홍헌(文弘獻)
?~1593(선조 26) 자(字)는 여징(汝徵), 1592년 임진왜란 때 진사(進士)로서 초토사(招討使) 고경명(高敬命)을 따라 싸우다 금산(錦山)에서 패하자 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의 막하에서 진주성(晋州城)에 집결한 의병장들과 합류, 분전 끝에 성이 함락되자 최경회와 함께 강에 투신해서 자살했다.
[남평문씨] 문희성(文希聖)
자(字)는 경수(敬修), 호(號)는 지헌(止軒), 판관(判官) 관도(貫道)의 아들. 1594년(선조 27) 무과(武科)에 급제,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전공을 세웠고, 광해군(光海君) 때에 광주 목사(光州牧使)를 거쳐 방어사(防禦使)로서 원수(元帥) 강홍립(姜弘立)을 따 라 요동(遼東) 싸움에 출전, 홍립과 함께 후금(後金)에 투항, 화의(和議)...
[남평문씨] 문재도(文載道)
자(字)는 계기(戒器), 호(號)는 휴헌(休軒).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백의(白衣)로 관군(官軍)에 참가하여 공(功)을 세웠다.
1603년(선조 36)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왕(王)을 호종(扈從)한 공(功)으로 3군(三郡)의 수령(守令)을 거쳐 경상좌도 수군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를 지냈다.
[남평문씨] 문기방(文紀房)
?~1592(선조 25) 자(字)는 중률(仲律), 강성군(江城君) 익점(益漸)의 후손.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수문장(守門將)이 되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義兵)을 일으켜 전라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이복남(李福男)을 따라 남원(南原)에서 싸우다가 적에게 포위되어 이복남과 함께 전사했다. 남원(南原)의 충렬사(忠烈祠)에 제향되었다....
[남평문씨] 문관도(文貫道)
1550(明종 5)~? 1584년(선조 17) 문과(文科)에 급제, 하양 현감(河陽縣監). 경주판관(慶州判官)을 지내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아들 희성(希聖)․희현(希賢)․희철(希哲)을 거닐고 창의(倡義)하였으며 경상도 순찰사(慶尙道巡察使)의 중군(中軍)으로 재직(在職) 중 감영(監營)에서 순직(殉職)하였다. 호조 참판(戶曹參判)...
[남평문씨] 문희현(文希賢)
호(號)는 송제(松齊). 조선조(朝鮮朝)에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남평문씨] 문석생(文石生)
호(號)는 죽계(竹溪). 1624년(인조 2) 이 괄(李 适)의 난(亂)이 일어나자 도원수(都元帥) 장 만(張 晩)의 막하(幕下)에서 싸우다 강도(江都)에서 순절(殉節)했다. 진무훈(振武勳)에 책록, 판관(判官)에 추증(追贈)되었다.
[남평문씨] 문회(文 晦)
자(字)는 자명(自明). 1624년(인조 2) 이 괄(李 适)의 난(亂)을 고변(告變)하여 진무공신(振武功臣) 3등(三等)으로 오천군(鰲川君)에 봉해졌다.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지내고, 자헌대부(資憲大夫)․공조 판서(工曹判書)에 추증(追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