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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천장흥마씨] 마전(馬 腆)
자(字)는 후경(厚卿), 호(號)는 조은(釣隱). 일찍이 호학(好學)하였으며 단양 군수(丹陽郡守)를 지냈다. 1456년(세조 2) 장흥(長興)에 낙향(落鄕)하여 회포(懷抱)를 예양강(汭陽江)에서 시(詩)로써 읊었다.
[목천장흥마씨] 마반(馬 胖)
자(字)는 윤경(允卿), 호(號)는 규당(規堂). 1456년(세조 2) 벼슬을 버리고, 옛 병마 본영(兵馬本營)인 도강(道康 : 지금의 강진)에 돌아와서 후진 양성(後進養成)에 일생을 바쳤다.
[목천장흥마씨] 마준(馬 月春)
자(字)는 성경(聖卿), 호(號)는 만죽(萬竹). 일생을 학문(學問)과 함께 하였다. 당시 북방개척(北方開拓)을 상소(上疏)한 부원군(府院君)을 뜻을 따라서 입북(入北)하여 북방개척에 선도적(先導的) 역할을 하고, 미개(未開)한 향민(鄕民)들에게 학문(學問)을 가르쳤다. 성종(成宗) 때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다.
[목천장흥마씨] 마중규(馬仲規)
초명(初名)은 숭조(崇祖). 조선 때 폭군(暴君) 연산(燕山)의 실정(失政)에 항거하였다.
[목천장흥마씨] 마성훈(馬成勳)
자(字)는 칭덕(稱德).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그의 종형(從兄) 윤(倫)과 함께 의병(義兵)을 모아 고경명(高敬命)의 후원군(後援軍)으로 활약했다.
[목천장흥마씨] 마온종(馬溫宗)
자(字)는 성여(誠如), 호(號)는 모국(慕國).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형 운종(雲宗), 아우 창종(昌宗)과 같이 의병(義兵)을 모아 왜병(倭兵)과 격전,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진주전(晋州戰)에서 조카는 전사하였다. 뒤에 통정대부 (通政大夫)에 추중(追贈)되었다.
[목천장흥마씨] 마지룡(馬之龍)
자(字)는 비섭(丕燮), 호(號)는 죽암(竹菴). 조선 효종(孝宗) 때 심양(瀋陽)에서 금주(錦州) 공략의 선봉장(先峰將)이 되라는 청(淸) 나라의 요청(要請)에도 불구하고 명(明)나라를 잊을 수 없다하여 부하들에게 촉(촉)과 환(丸)을 빽 화살만 쏘게 하여 청(淸)으로 부터 죽음을 당했다. 명(明)나라로부터 대명충신조선의사(大明忠臣朝鮮義士)라는 호(號)를...
[목천장흥마씨] 마하수(馬河秀)
? ~ 1597 (선조 30) 자(字)는 선천(先天), 호(號)는 주촌(舟村). 임진왜란 때 선공 주부(繕工主簿)로서 1597년(선조 30) 이순신(李舜臣)이 무고로 투옥하자 사직. 이순신이 풀려나자 군사를 지휘할 때 향선(鄕船) 10여 척을 거느리고 명량해전(鳴梁海戰)에 참전, 적선에 포위된 이순신을 구하기 위하여 칼을 빼어 적진에 돌입했으나 적탄에 맞아...
[목천장흥마씨] 마계변(馬繼卞)
조선조(朝鮮朝)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을 역임하였다. 천성(天性)이 온화(溫和)하고 효심(孝心)이 지극(至極)하였고, 문학(文學)에 심취하여 책을 놓지 않았다. 낙향하여 향리(鄕里)에서 후학(後學) 양성에 여생을 바쳤다.
[목천장흥마씨] 마응방(馬應房)
? ~ 1597 (선조 30) 자(字)는 정숙(靖叔), 호(號)는 용암(龍庵). 음보로 현감(縣監)이 되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에 의병으로 활약, 1597년 정유재란 때 청주에서 전사했다.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
[목천장흥마씨] 마군후(馬君厚)
자(字)는 인백(仁伯), 호(號)는 양촌(陽村). 조선 정조(正祖) 때 사람으로 화필(畵筆)이 선경(仙境)이 이르렀으며 특히 인물(人物)․영모(翎毛)에 뛰어났다.
[목천장흥마씨] 마성린(馬聖麟)
자(字)는 경의(景義), 호(號)는 미산(眉山). 조선 정조(正祖) 때 사람으로 글씨는 특히 해서(楷書)․초서(草書)에 뛰어나서 당시 사람들이 신필(神筆)이라 일컫었으며, 판자(板子)에 루(鏤 : 새긴것)한 것이 전한다.
[목천장흥마씨] 마지성(馬之成)
자(字)는 운서(雲瑞). 조선 때 의성(義城)에서 수학(修學)하여 절충장군(折衝將軍)이 되었고, 사재(私財)를 털어 많은 사람들을 도와 조정에서 고양서추(高揚西樞)라 하였으며, 그의 계자(季子) 찬룡(贊龍)이 인조(仁祖) 때 원종공신(原從功臣)으로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에 추증(追贈)되었다.
[목천장흥마씨] 마비(馬 非)
김제(金提) 사람으로 출가하여 서치명(徐致命)의 아내가 되었다. 남편이 죽자 20여년 간 상(喪)을 벗지 않고 조석(朝夕) 상식을 폐하지 않았으므로 1492년(성종 23)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목천장흥마씨] 마행일(馬行逸)
자(字)는 운일(運一), 호(號)는 성암(省菴). 1853년(철종 4) 소모사(召慕使)로 관계(官界)에 들어가서 부령 부사(富寧府使)․ 무산 부사(茂山府使)․경원 부사(慶源府使)․경흥 부사(慶興府使) 등을 역임하면서 선정(善政)을 베풀었으므로 세칭(世稱) 관북 대감(關北大監)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