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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고성남씨] 남의록(南義祿)
자(字)는 계수(季綬).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1592년(선조 25)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로서 출전(出戰)하여 경주(慶州)에서 많은 공(功)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錄勳)되었으며 병기시 판관(兵器寺判官)을 역임하였다.
[영양고성남씨] 남경훈(南慶薰)
자(字)는 응화(應和), 호(號)는 난고(蘭皐). 조선 때 학행(學行)으로 이름이 높았고,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홍의장군(紅衣將軍) 곽재우(郭再祐)의 진(陳)에서 승전책(勝戰策)을 토의(討議)하였다. 부지(府誌)와「망우당집(忘憂堂集)」에 사실이 기재되어 있다.
[영양고성남씨] 남율(南 慄)
자(字)는 자관(子寬).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창의(倡義)하여 곽재우(郭再祐)의 진(陳)에서 싸웠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으로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훈련원 판관(訓練院判官)을 역임하였다.
[영양고성남씨] 남붕익(南鵬翼)
조선(朝鮮) 때 학행(學行)으로 명성이 높았고, 1672년(숙종 5)에 예조좌랑(禮曹佐郞)이 되었으나 사임하고, 영산현(靈山縣)을 많이 남겼다.
[영양고성남씨] 남노명(南老明)
자(字)는 태서(台瑞), 호(號)는 만취헌(晩翠軒). 조선 때 진사시(進士試)를 거쳐 문과(文科)에 급제한 후에 여러 관직을 거쳐 거창 부사(居昌府使)로서 치적(治績)을 많이 남겼다.
[영양고성남씨] 남구명(南九明)
1661 (현종 2) ~ 1719 (숙종 45) 자는 기서(箕瑞), 호는 우암(寓菴), 상주(尙周)의 아들. 1687년(숙종 13)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1693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했으나 벼슬에 뜻이없어 고향에 내려가 10여년간 은거, 형노명(老明)의 강권으로 전적(典籍)을 지내고, 1711년(숙종 37) 제주통판(濟州通判)으로 ...
[영양고성남씨] 남하명(南夏明)
자(字)는 시서(時瑞). 조선 때 전적(典籍)을 지냈다.
[영양고성남씨] 남제명(南濟明)
자(字)는 규서(圭瑞), 호(號)는 수약당(守約堂). 조선조(朝鮮朝)의 학자(學者)로 학행(學行)이 뛰어났다.
[영양고성남씨] 남기만(南基萬)
1730 (영조 6) ~ 1796 (정조 8) 자는 백온(泊溫), 호는 묵산(黙山), 국규(國珪)의 아들. 영해(寧海) 출신. 1774년(영조 50)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지평(持平)을 거쳐 1796년 정언(正言)으로 있을 때 천주교(天主敎)의 탄압을 상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직했다. 경학(經學)에 밝았 다.
[영양고성남씨] 남경희(南景羲)
자(字)는 중은(仲殷), 호(號)는 치암(癡庵). 조선(朝鮮)때 정언(正言)을 지냈다.
[영양고성남씨] 남공수(南公壽)
자(字)는 치도(穉道), 호(號)는 영은(瀛隱). 조선 때 학행(學行)이 뛰어난 학자(學者)였으며,「계각촬요(溪刻撮要)」외에도 저서(著書)가 많이 남아 있다.
[영양고성남씨] 남군보(南君甫)
1186 (명종 16) ~ 1264 (원종 5) 호(號)는 백천(柏川). 고려 때 통헌대부(通憲大夫)로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역임하였다.
[영양고성남씨] 남공약(南公若)
고려(高麗)에서 위위시승(衛尉寺承)․동정(同正)을 역임하였다.
[영양고성남씨] 남익지(南益胝)
고려조(高麗朝)에 풍저창 부사(豊儲倉副使)를 역임하였다.
[영양고성남씨] 남효윤(南孝允)
고려 때 대장군(大將軍)을 지내고,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추증되었으며 의산군(宜山君)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