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 27860건, 780/1858 페이지
[금성나씨] 나덕헌(羅德憲)
자(字)는 헌지(憲之), 호(號)는 장암(將岩), 시호(諡號)는 충렬(忠烈).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부안 현감(扶安懸監)을 지내고 의주 판관(義州判官), 길주(吉州)․정주 목사(定州牧使), 창성 부사(昌城府使)․의주부윤(義州府尹)을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 2) 안현(鞍峴)에서 이 괄 (李 适)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
[금성나씨] 나성진(羅星軫)
조선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금성나씨] 나재흥(羅再興)
호(號)는 호산(湖散).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충청도 병마우후(忠靑道兵馬虞候)를 역임하고 병조 참의(兵曹參議)에 추증되었다.
[금성나씨] 나이례(羅以禮)
조선에서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다.
[금성나씨] 나윤소(羅允素)
조선조(朝鮮朝)에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역임하였다.
[금성나씨] 나계소(羅繼素)
조선 때 군수(郡守)를 지냈다.
[금성나씨] 나위소(羅緯素)
1583 (선조 16) ~ 1667 (현종 8) 자(字)는 계빈(季彬), 현감(縣監) 덕준(德峻)의 아들. 1616년(광해군 8) 생원(生員)이 되고, 1623년(인조 1) 개시문과(改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형조 좌랑(刑曹佐郞)을 지낸 후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옥과 현감(玉果縣監)으로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을 도와 군량...
[금성나씨] 나회소(羅繪素)
조선(朝鮮) 때 부사(府事)를지냈다.
[금성나씨] 나의소(羅宜素)
조선조에서 예조 정랑(禮曹正郞)을 역임하였다.
[금성나씨] 나학소(羅鶴素)
조선 때 예조 좌랑(禮曹佐 郞)을 지냈다.
[금성나씨] 나중소(羅仲昭)
호(號)는 포석(抛石). 경기도출신. 구한말 진위대 부위(鎭衛隊副尉)를 지내다가 한일합방 후에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 1919년 김좌진(金佐鎭)․서 일(徐 一)․현천묵(玄天黙) 등과 길림성 왕청현(吉林省汪淸縣)에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를 창설 하여 참모장이 되었으며, 독립군의 양성을 위해 사관양성소를 설치했다.
이듬해 참모장으로서 대장(隊長) ...
[금성나씨] 나창헌(羅昌憲)
희천(熙川) 출신. 한일합방 후 독립운동에 투신, 1919년 청년외교단원(靑年外交團員) 및 대동단원(大同團員)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3년간 복역했다.
출옥 후 상해(上海)에 건너가서 1922년한국 노병회(韓國勞兵會)의 이사(理事)․교육부원(敎育部員), 1924년에는 학무 위원․교민단의 사원(僑民團議事員), 1925년 임시대통령 이승만(李承晩) 탄핵안 제안...
[금성나씨] 나정귀(羅正龜)
평북 태천(泰川) 출신. 3․1운동 후 만주로 망명, 관전현(寬甸縣)에서독립단(獨立團) 토벌대장이 되어 활약했다.그 뒤 백세창(白世昌)과 일본의 앞잡이 보민회(保民會)를 습격하다가 체포되어 본국에 압송, 서울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 병사했다.
[금성나씨] 나종길(羅鍾吉)
1919년 3․1 운동 때 전남(全南) 광양(光陽)에서 민중의 선봉(先鋒)이 되어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뤘다.
그 공은 선양하고 후진의 애국심(愛國心) 교화(敎化)의 상징으로 광양군(光陽郡) 일곱 의사(義士)의 3․1 운동 기념비(紀念碑)가 광양(光陽)에 세워졌다.
[금성나씨] 나학도(羅學道)
평남 순천(順川)에서 상무사(商務社) 사장으로 있다가 1909년(융희 3)일본 재무서(財務署)에서 시장세(市場稅)를 징수하자 최봉환(崔鳳煥)과 의논, 상민회(商民會)를 조직하고 그 회장이 되어 철시(撤市) 등으로 세금의 납부 반대운동을 벌였다.
이듬해 1월 강제로 세금을 징수하려는 일본 재무서원과 충돌, 상민회 회원을 인솔하고 무력으로 항쟁하다 폭동․방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