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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김씨] 김성겸(金聖謙)
1790 (정조14) ~ 1865 (고종2) 자는 사목(士牧) 호는 지족당(知足堂) 1812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병조좌랑(兵曹佐郞), 장령(掌令), 응교(應敎), 호조참의(戶曹參議)를 역임하고 대사간(大司諫)에 이르렀다.
[청풍김씨] 김우연(金友淵)
1797 (정조21) ~ 1871 (고종8) 자는 희안(希顔) 호는 연가제(然可齊) 1852년 식년문과(式年文科) 병과(丙科)로 급제 북청부사(北靑府使)를 거쳐 사간원(司諫院) 사간(司諫)에 이르렀다.
[청풍김씨] 김기서(金基敍)
자는 정택(正宅) 1803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정언(正言)을 역임했으며 유고(遺稿)가 전한다.
[청풍김씨] 김주교(金周敎)
1802 (순조2) ~ 1860 (철종11) 자는 범수(凡秀) 호는 고산(古山) 참판(參判) 희조(熙朝)의 아들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의 문인 진성현감(眞城縣監)을 역임했고 효자(孝子)로 정려(旌閭)되었다.
[청풍김씨] 김동규(金東奎)
1803 (순조3) ~ 1884 (고종21) 자는 여관(汝寬) 호는 성아헌(醒哦軒)이다. 성균관(成均館) 진사(進士)로 통정대부(通政大夫) 절충장군(折衝將軍) 부호군(副護軍)에 오르고 문사(文詞)가 널리 알려졌고 유고(遺稿)가 전한다.
[청풍김씨] 김익철(金益哲)
1804 (순조4) ~ 1829 (순조29) 자는 명여(明汝) 돈령부 참봉(敦寧府參奉) 진위현령(振威縣令), 문화(文化), 서산(瑞山), 배천군수(白川郡守)등을 역임하고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追贈)되었다.
[청풍김씨] 김기상(金基常)
1807년(순조 7) 관직(官職)에 올라 계방 좌승지(桂房左承旨) 등을 거쳐 호조 참판(戶曹參判)이 되었다.
[청풍김씨] 김기찬(金基纘)
1809 (순조 9) 자는 공서(公緖), 호는 석거(石居), 주묵(周黙)의 아들. 1835년(헌종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집의(執義)를 거쳐 18 52년(철종 3) 대사간이 되고, 이어 이조 참의(吏曹參議)․이조 참판(吏曹參判)을 지냈다.
[사천박씨] 박운(朴 芸)
조선조(朝鮮朝)에 낭장(郎將)을 역임하였다.
[안정나씨] 나계종(羅繼宗)
조선조(朝鮮朝)에 한성부 참군(漢城府參軍)을 역임했다.
[청풍김씨] 김익문(金益文)
시호는 문정(文靖). 1838년(헌종 4)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경주유수(慶州留守)․예조판서(禮曹判書)․우참찬(右參贊) 등을 역임했다.
[청풍김씨] 김학성(金學性)
1807 (순조 7) ~ 1875 (고종12) 자는 경도(景道), 호는 송석(松石), 시호는 효문(孝文), 종정(鍾正)의 증손, 동헌(東獻)의 아들. 1829년(순조 29)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1844년 이조 참판(吏曹參判), 1848년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 이어 호조 판서를 지냈다. 1850년(철종 1) 광주부 유수(廣州府留守...
[청풍김씨] 김세호(金世鎬)
1806 (순조 6) ~ 1884 (고종 21) 자는 치현(稚賢), 호는 수재(修齋), 진교(晋敎)의 아들. 1843년(헌종 9) 식년전시(式年殿試)에 병과(丙科)로 급제, 1846년(헌종 12)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경상도 관찰사를 거쳐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을 지냈다.
[청풍김씨] 김직연(金直淵)
1811 (순조11) ~ 1884 (고종21) 자는 경우(景禺)이고 호는 품산(品山) 1846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삼사(三司)를 거쳐 승지(承旨) 병조참의(兵曹參議)등을 지내고 대사성(大司成)에 이르렀고 유고(遺稿)가 전한다.
[청풍김씨] 김동원(金東元)
1812 (순조12) ~ 1859 (철종10) 자는 선경(善卿)이며 1855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장원(壯元)하고 교리(校理)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