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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김굉(金 土宏)
1739 (영조 15) ~ 1816 (순조 16) 자는 자야(子野), 호는 귀와(龜窩), 생원(生員) 광헌(光憲)의 아들. 이상정(李象靖)의 문인. 1777년(정조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1787년(정조 11) 전적(典籍)으 거쳐 단양 군수(丹陽郡守)․시강원 문학(侍講院文學)․예조 참판(禮曺參判)을 지냈다.
[의성김씨] 김한동(金翰東)
1740 (영조 16) ~ 1811 (순조 11) 자(字)는 한지(翰之), 호는 와은(臥隱), 조랑(佐郞) 경필(景泌)의 아들. 1789년(정조 13)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정어(正言)․부교리(副校理)를 거쳐 1797년(정조 210 전라도 관찰사, 이듬해 대사간(大司諫), 1800년(순조 즉위) 돈령부 도정(敦寧府都正)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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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김씨] 김흥락(金興洛)
1827 (순조 27) ~ 1899 (광무 3) 호는 서산(西山), 성일(誠一)의 후손. 류치명(柳致命)의 문인.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지평(持平)이 되고, 승지(承旨)에 이르렀다.
[의성김씨] 김진화(金鎭華)
자는 성관(聖觀), 호는 탄와(坦窩). 현감(縣監)․목사(牧使) 등을 역임하였다.
[의성김씨] 김진형(金鎭衡)
1801 (순조 1) ~ ? 자는 덕종(德綜), 종수(宗壽)의 아들. 1850년(철종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1853년(철종 4) 교리(校理)로 이조 판서 옹기순(洪箕淳)의 배공달리(背公黨利)를 탄핵하다가 수찬(修撰) 남종순(南種順)에게 몰려 한때 명천(明川)에 귀양갔다. 그솟에서 귀양간 내력과 생활을 기록한 작품 「북천가(北遷歌)...
[의성김씨] 김영수(金永銖)
자는 학일(學一), 호는 만산(晩山). 1891년(고종 28) 복시(覆試)에 진사(進士)로 합격, 1906년(광무 10)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오르고 장기 군수 겸 경주 병마절제사(長鬐郡守兼慶州兵馬節制使)를 지냈다. 1910년 한일합방이 일어나자 사직하고 고향에서 후진 양성에 전념했다.
[의성김씨] 김도화(金道和)
호는 탁암(拓菴). 유일(遺逸)로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에 천거되었으며, 의병장(義兵將)으로서 공훈이 많았다.
[의성김씨] 김하락(金河洛)
호는 해운당(海雲堂).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乙未事變) 후 의병에 가담하여 노루목․이현(梨峴) 전투에서 큰 전과를 올리고 의병대장이 되어 여러 전투에서 위훈(偉勳)을 세웠으며 영덕(盈德)에서 전사했다.
[의성김씨] 김동삼(金東三)
호는 일송(一松), 독립운동가. 1907년(융희 1) 고향에 협동중학교(協同中學校)를 설립하였고, 1913년 만주에서 부민단(扶民團)을 조직했다. 그후 임시정부(臨時政府)에 관계하다가 1931년 만주사변 대 경찰에 체포되어 평야에 송환, 10년형을 선고받았고, 1937년 마포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복장이 수여되었다.
[의성김씨] 김원식(金元植)
자는 계서(繼緖), 호는 소창(笑蒼). 석주(石州) 이상룡(李相龍)․일송(一松) 김동삼(金東三)과 함께 독입운동을 하였다. 1966년 3 월 1 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建國功勞勳章)이 수여되었다.
[신창노씨] 노후(盧 珝)
고려(高麗) 때 병부 상서(兵部尙書)를 역임하였다.
[의성김씨] 김창숙(金昌淑)
1879(고종 16)~1962 자는 문좌(文佐), 호는 심산(心山)․벽옹(躄翁), 성주(星州) 출신. 어려서 유학을 배웠고 문장에 능 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전국 유림(儒林) 대표들이 서명한,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유림 단 진정서(儒林團陳情書)를 휴대하고 상해(上海)로 건너가 파리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萬國 平和會議)에 우송했다.1925년 ...
[의성김씨] 김붕준(金鵬濬)
자는 기원(起元), 호는 당헌(棠軒). 보성중학교․상해 법정대학 졸업. 1919년 3․1운동 후 상해(上海)로 망명, 임시정부(臨時政府) 수립에 참가했으며 1939년 제 15대 임시 의정원 의장(臨時議政院議長)․ 임시 국무위원(臨時國務委員)으로 조국 광복에 힘썻으며, 8.15 해방 후 귀국, 민주의원(民主議院)의원․헌법대책연구위원(憲法對策硏究委員)․과도정부...
[의성김씨] 김황(金 榥)
호는 중재(重齋). 1919년 파리 강화회의에서 한일합방(韓日合邦)이 정다화되자 당시의 외무대신(外務大臣)인 김윤식(金允植)에게 진정한 뜻을 만국에 밝히라고 주장했고, 1926년 김창숙의 독립운동자금 모금에 관련, 6개월간 옥고를 치루었다.
[개성내씨] 내몽섭(乃夢燮)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