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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천노씨] 노전(盧 銓)
1634 (인조 12) ~ 1690 (숙종 16) 자는 계형(季衡), 군수(郡守) 홍기(弘器)의 아들. 무과(武科)에 급제, 여러 군현(郡縣)을 다스리고 함경북도 병마절도사(咸鏡北道兵馬節度使)가 되어 군비의 확장과 방위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학문의 진흥에도 힘써 길주(吉州)의 임명서원(臨溟書院), 북청(北靑)의 노덕서원(老德書院)을 중수(重修)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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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천노씨] 노광두(盧光斗)
자(字)는 청지(淸之), 호(號)는 감모재(感慕齋). 조선 때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지냈다.
[풍천노씨] 노세하(盧世夏)
조선(朝鮮) 때 장령(掌令)을지냈다.
[풍천노씨] 노세남(盧世南)
조선(朝鮮)에서 학유(學諭)를 역임하였다.
[풍천노씨] 노백린(盧伯麟)
1875 (고종 12) ~ 1926 호는 계원(桂元). 황해도 풍천(豊川) 출신. 일본에 건너가 게이오오의숙(慶應義塾) 보통과(普通科)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육군 정령(正領)에 임명되어 관립무관학교(官立武官學校)의 교육국장․교장 등을 지내고, 1907년(융희 1) 안창호(安昌浩) 등과 신민회(新民會)를 조직, 국권 회복을 위해 활약했다.
이...
[광주노씨] 노필상(魯弼商)
조선조(朝鮮朝)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광주노씨] 노국남(魯國男)
조선조(朝鮮朝)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광주노씨] 노의관(魯儀官)
조선조(朝鮮朝)에 돈령(敦寧)이었다.
[안정나씨] 나사종(羅嗣宗)
자(字)는 광체(光逮), 호(號)는 퇴수헌(退修軒). 조선조(朝鮮朝)에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다.
[신창노씨] 노집(盧 輯)
조선조(朝鮮朝)에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신창노씨] 노경운(盧景雲)
조선(朝鮮)에서 인의(引儀)를지냈다.
[신창노씨] 노경림(盧景霖)
자(字)는 응윤(應潤). 조선조에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이르렀다.
[신창노씨] 노주(盧 鑄)
자(字)는 백수(伯粹). 조선조(朝鮮朝)에 호군(護軍)을 역임하였다.
[신창노씨] 노대유(盧大有)
자(字)는 숙보(肅甫). 조선 때 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
[신창노씨] 노순(盧 錞)
1551 (명종 6) ~ ? 자(字)는 자협(子協), 호는 매와(梅窩). 조 식(曺 植)의 문인.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의병(義兵)을 일으켜 군량 수집을 맡았고 이듬해 영변 부사(寧邊府使)가 되었다. 영변의 상음서원(霜陰書院), 삼가(三嘉)의 귀연서원(龜淵書院)에 제향(祭享)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