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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심씨] 심진(沈 鎭)
자(字)는 계양(季陽) 좌통례(左通禮) 달원(達源)의 아들. 임천군수(林川郡守)를 역임하였다.
[청송심씨] 심자(沈 鎡)
1518 (중종 13) ~ 1578 (선조 11) 자(字)는 중시(仲時) 좌통례(左通禮) 달원(達源)의 아들. 김제군수(金堤郡守)를 역임하고 선공감첨정(繕工監僉正)에 이르렀다.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에 증직되었다.
[청송심씨] 심건(沈 鍵)
1519 (중종 14) ~ 1550 (명종 5) 자(字)는 중계(重啓) 호(號)는 경성헌(警省軒) 동돈녕 봉원(逢源)의 아들. 1548년(명종 3)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 옥당(玉堂)을 거쳐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를 역임하였고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었다.
[청송심씨] 심전(沈 銓)
1520 (중종 15) ~ 1589 (선조 22) 자(字)는 숙평(叔平), 좌통례(左通禮) 달원(達源)의 아들. 1546년 문과(文科)에 급제한 후 1556년 중시(重試)에도 합격, 전주부윤(全州府尹) 경기감사(京畿監司)를 역임하였다. 한때 일이 잘못되어 파직되었다가 신원 복작되고 청파부원군(靑坡府院君)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었다.
[청송심씨] 심수(沈 鐩)
1522 (중종 17) ~ 1580 (선조 13) 자(字)는 중양(仲陽 ) 진사(進士) 흥원(興源)의 아들. 곡산군수(谷山郡守)를 역임하고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추증되었다.
[청송심씨] 심뇌(沈 鐳)
좌의정 통원(通源)의 아들. 무과(武科)에 급제,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을 지냈다.
[청송심씨] 심횡(沈 鈜)
좌의정 통원(通源)의 아들. 대호군(大護軍)을 역임하였다.
[청송심씨] 심순(沈 荀)
1525(중종 20) ~ 1572 (선조 5) 자(字)는 이로(頤老) 현감 종원(宗元)의 아들. 1561년(명종 16)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병조정랑(兵曹正郎)을 거쳐 풍덕군수(豊德郡守)를 역임하였고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에 추증되었다.
[청송심씨] 심금(沈 錦)
1531 (중종 26) ~ 1565 (명종 20) 자(字)는 미중(美仲) 좌참찬 광언(光彦)의 아들. 1555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직장(直長) 주부(主簿) 호조좌랑(戶曹佐郞)과 사헌부 감찰(監察)을 거쳐 과천현감(果川縣監) 재직 중 관사에서 순직(殉職)하였으며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증직되었다.
[청송심씨] 심인겸(沈仁謙)
1533 (중종 28) ~ 1580 (선조 13) 자(字)는 양숙(讓叔),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 강(鋼)의 아들. 1558년(명종 13)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 호조(戶曹) 형조정랑(刑曹正郎)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 천안․풍덕․온양군수(溫陽郡守)를 역임하고,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추증(追贈) 되었다.
[죽산안씨] 안종철(安宗喆)
자(字)는 숙보(淑保). 조선 때 직장(直長)을 지냈다.
[청송심씨] 심의겸(沈義謙)
1535 (중종 30) ~ 1587 (선조 20) 자(字)는 방숙(方叔) 호(號)는 손암(巽庵),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 강(鋼)의 아들. 이 황(李 滉)의 문인. 1555년(명종 10)에 진사(進士)가 되고, 1562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 이듬해 병조좌랑(兵曹佐郞)을 거쳐 정언(正言) 부수찬(副修撰) 교리(校理)를 역임, 그 해 외숙 이 양(李 ...
[청송심씨] 심원해(沈源海)
1536 (중종 31) ~ 1597 (선조 30) 자(字)는 비용(丕容) 곤(崑)의 아들. 1567년(명종 22)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군기시정(軍器寺正)을 역임한 뒤 철원부사(鐵原府使)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의 군공으로 승정원 도승지(承政院都承旨)에 추증되었다.
[청송심씨] 심예겸(沈禮謙)
1537 (중종 32) ~ 1598 (선조 31) 자(字)는 문숙(文叔)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 강(鋼)의 아들. 1570년(선조 3)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여 개성부(開城府)에 재직시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군량보급(軍糧補給)에 공을 세워 성천부사(成川府使)를 지냈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청송심씨] 심지겸(沈智謙)
1540 (중종 35) ~ 1568 (선조 1) 자(字)는 공달(公達)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 강(鋼)의 아들.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를 역임하였으며 효(孝)로 호조정랑에 추증되고 정려(旌閭)가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