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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오씨시조(和順吳氏),오원(吳元),화순오씨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始祖 本貫由來)
화순오씨(和順吳氏)는 현필(賢弼 : 보성 오씨 시조)의 셋째 아들 오원(吳元)을 시조(始祖)로 하여 화순(和順)에 세거(世居)하면서 보성 오씨(寶城吳氏)에서 분적(分籍), 본관(本貫)을 화순(和順)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화순(和順)은 전라남도(全羅南道)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원래 백제(百濟) 잉리아현(仍利...
해주오씨,해주오씨시조,오인유,해주오씨시조설단비,해주오씨조상인물
해주오씨의 연원(海州吳氏의 淵源)
周太王에 二者가 있었으니 長子는 泰伯이요, 仲子는 仲雍이고 계자는 계력이다. 계력이 아들 昌을 낳으니 이분 이 後日 周文王이다. 태왕은 昌이 聖德이 있음을 알고 傳 位하려하나 泰伯과 仲雍이 있어 말을 못하였더니 泰伯이 父親의 뜻을 알고 아우 仲雍과 함께 멀리 長江(楊子江) 을 건너 살았으니 지 금의 江蘇省吳縣이다. 그 地...
원주김씨시조(原州金氏),김거공(金巨公),원주김씨조상인물
원주김씨(原州金氏)
원주김씨시조 김거공(金巨公)은 신라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의 제8자 일선군(一善君) 추(鐘)의 6세손 주(離)의 셋째 아들이다. 그는 고려 의종 때 서리(肖吏) 출신으로 이부상서(吏部尙書)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판삼사사(判三司事)를 거쳐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내고 원성백(原城伯)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흥양오씨(興陽吳氏),오완(吳完),흥양오씨조상인물
흥양오씨(興陽吳氏)의 연원(淵源)
흥양오씨는 중국의 주태왕(周太王)의 후예요, 오(吳)나라 부차왕(夫差王)의 손자(孫子)이신 루양왕(鏤羊王)이 위(衛) 땅에 들어가시어 위후(衛候)가 되셨는데 오(吳)의 땅에서 위(衛)의 땅으로 들어 가셨다고 해서 오(吳)를 성(姓)으로 받게 되셨다.
흥양오씨의 시조(始祖) 오완(吳完)은 오현필(吳賢弼) 보성오씨(寶城吳氏...
오씨(伍씨)는 본래 중국 성씨이며, 우리 나라에는 배천(白川),부흥(復興) 2본이 전한다
오씨(伍씨)는 본래 중국(中國) 성씨(姓氏)이며, 우리 나라에는 배천(白川)․부흥(復興) 2본이 전한다. 배천 오씨(白川伍氏)의 시조(始祖)는 미상(未詳)하고 부흥 오씨(復興伍氏) 시조는 오윤부(伍允孚)로서 고려(高麗) 충선왕(忠宣王) 때 찬성사(贊成事)를 지냈다. 그 후 국세조사(國勢調査)에는 이 성씨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의령옥씨시조(宜寧玉氏),옥진서(玉眞瑞),의령옥씨조상인물
의령옥씨시조
옥씨(玉氏)는 중국(中國)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 우리나라 옥씨(玉氏)의 연원(淵源)은 고구려(高句麗)의 요청에 의해 당(唐) 나라에서 파견된 8재사(八才士) 중의 한사람인 옥진서(玉眞瑞)가 신라(新羅)에서 국학 교수(國學敎授)를 역임하고, 의춘(宜春 : 의령의 별칭)군(君)에 봉해져 의령(宜寧)에 정착 세거(定着世居)하면서 부터이...
봉성온씨시조(鳳城溫氏),온달(溫達),봉성온씨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온씨(溫氏)는 중국(中國) 주(周)나라 성왕(成王)의 아우로 당(唐)에 봉해진 숙우(叔虞)의 12세손 소후(昭候)가 그의 아우 사(師)를 온(溫)에 봉하고 평원(平原)에 도읍을 정하게 하니 온씨의 성(姓)이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온씨(溫氏)의 본관(本貫)은 서원(西原)․온양(溫陽)․전주...
[청주경씨] 경순수(慶舜壽)
자는 승로(蠅老)이다. 선조 때 벼슬에 올라 여러직을 거처 인조 15년 임금의 특지(特旨)로 춘천(春川)부사에 제수 되었다가 이듬해 풍천(豊川)부사로 전임되었고 여러 번 승진하여 가선대부 동지의금부사를 지냈다.
[청주경씨] 경신후(慶信後)
인조 때 문관으로 여러 직을 거처 문화(文化)현령에 제수되어 재임 중 인조 5년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봉산군수 신계현령 등과 함께 3.000여 병마를 거느리고 혈전을 벌리다가 중과부적으로 장렬하게 순국하였다.
[청주경씨] 경취(慶 冣)
자는 낙선(樂善)이고 호는 신강(新江)이다. 사헌부의 감찰(監察), 장령(掌令), 홍문관 수찬(修撰), 교리(校理)를 거처 한성부윤(漢城府尹), 개성 유수(開城留守)를 역임하고 경기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승정원의 도승지(都承旨)겸 경연참찬(經廷參贊)을 지냈다. 후에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승임되어 예조참판 (禮曺參判)을 역임하였다.
[청주경씨] 경광국(慶光國)
자는 성관(聖觀)이고 호는 우산휴퇴(愚山休退) 또는 석옹(石翁)이다. 조선말의 문신으로 여러 관직을 거처 고종조(1882년)에 음(陰)으로 북부도사(北 部都事)가 되고 후에 통정대부에 올라 희천(熙川), 영해(寧海) 부사를 지냈다. 고종 25년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유길준 등과 더불어 갑신(甲申) 정변을 이르켰으나 청(淸)나라의 개입으로 실패하고 중국...
[청주경씨] 경석조(慶錫祚)
자는 건양(建陽)이고 호는 혜춘(惠春)이다. 1910년 한일합방조약이 체결되자 중국에 망명하였으며 북만주에서 둔전병(屯田兵)을 양성. 실력으로 국 권을 회복할 목적으로 광복회(光f夏會)를 조직하여 활동 중 일경(日警)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 운동에도 손병희 선생과 연락하면서 충북각지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는 등 항일 독립운동을 계속하다...
[청주경씨] 경권중(慶權重)
자는 난서(蘭西)다. 한학을 수학하고 학행(學行)으로 통사랑(通仕郞)에 올라 순강원(順康園), 참봉(參奉)을 지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어 국파군망(國破君亡)의 참혹한 지경올 당하여 100여명의 청장년을 모아 의병(義兵)을 이르켜 충북지역과 금산등지에서 일제에 항거하였다. 마침내 부대는 400여명으로 증강되어 전남의 구례, 곡성과 경남북 지역에...
[청주경씨] 경현수(慶賢秀)
자는 희백(希白)이고 호는 오암(悟庵)이다. 한말의 거유(巨儒)인 중암 김평묵(金平默) 선생의 제자가 되어 당대의 명유(名儒)가 되었다. 1895년을 미(乙未)의병을 이르켜 일제에 항거하고 1922년에는 일본제국의회에 독립청원서를 내는 등 일생을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하였다. 5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많은 전 과를 올리기도 하였으나 마침내 중과부적으로 패전...
[태인경씨] 경상조(景祥組)
고려(高麗) 때 사공(司空)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