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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송씨시조(金海宋氏),송천봉(宋天逢)
시조 및 본관의 유래
김해송씨(金海宋氏)의 시조(始祖) 송천봉(宋天逢)은 1330년(충숙왕 17)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정언(正言)․헌납(獻納)․기거랑(起居郞) 등을 지냈으며 충목왕조(忠穆王朝)에 감찰(監察)을 거쳐 장령(掌令)이 되어 당시 평리(評理)로 전횡을 일삼던 김윤장(金允藏)을 탄핵하다가 윤장의 참소로 오히려 초도(草島)로 유배되었다. 뒤에 풀...
남양송씨시조(南陽宋氏),송규(宋奎),송제(宋悌)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남양(南陽)은 지금의 경기도 수원(水源)과 화성군(華城郡) 일원을 포함한 지역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高句麗) 때의 당성군(唐城郡)을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이 당은군(唐恩郡)으로 개칭하였다가 고려(高麗) 초에 다시 당성군으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수주(水州: 수원)와 인주(仁州: 인천)에 편입되기도 했으나 1310년(충선...
덕산송씨시조(德山宋氏),송호산(宋盡山),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덕산송씨(德山宋氏)의 시조(始祖) 송호산(宋盡山)은 고려조에서 찬성사(贊成事)를 역임했고, 그의 아들 임(琳)은 판사(判 事)에 이르렀으며, 증손 문(文: 녹사 사명의 아들)이 고려 말에 호조판서 (戶曹判書)를 지냈으며 나라에 공을 세워 덕성군 (德城君)에 봉해졌다. 그 후 덕성(德城)의 지명이 덕산(德山)으로 개칭됨에 따라 후손들은...
문경송씨시조(聞慶宋氏),송신경(宋臣敬)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문경송씨(聞慶宋氏)의 시조(始祖) 송신경 (宋臣敬)은 누대 (累代)에 걸쳐 문경에 토착세거(土着世居)해 온 사족(士族)의 후예(後裔)로 고려 말엽에 공조(工曹) 및 이부(吏部)의 전서(典書)를 지내고 혼탁한 정국(政局)올 수습하려 했으나 간악한 무리들의 전횡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를 개탄하 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落鄕)하여 문경에...
신평송씨시조(新平宋氏),송구진(宋丘進)
시 조
신평송씨(新平宋氏)는 여산송씨(礪山宋氏)의 시조(始祖) 송유익(宋惟翊)의 12세손 말선(末善)이 홍주(洪州) 의 신평(新平)에 정착세거(定着世居)하며 여산송씨에서 분적(分籍)하였으나 병화로 인하여 중간계대(中間系代)가 실전(失傳)되자 후손들이 홍주(洪州)와 신평(新平)으로 갈라져서 각각 달리 세계(世系)를 잇게 되었다.
본관의 유래
신평(新平...
야성송씨시조(冶城宋氏),송맹영(宋孟英),본관의유래
시 조
야성송씨시조(冶城宋氏 始祖) 송맹영(宋孟英)은 고려(高麗) 목종(穆宗) 때 사람으로 간의대부(陳議大夫)와 총부의랑(德部議郞)을 역임하고 나라에 공(功)을 세워 야성군(冶城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그를 시조(始祖)로 받들고 야성(冶城)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14세에 이르러 직장공파(直長公派) · 상호...
양주송씨시조(楊州宋氏),송도성(宋道成)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양주(楊州)는 경기도(京畿道) 중앙 남부에 위치한 지명 (地名)으로 본래 고구려 (高句麗) 때 매성군(買城郡) 혹은 창화군(昌化郡)이라 하였는데,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이 내소(來蘇)로 고치고, 고려 초에 견주(見州)로 승격하였다가 1668년(현종 9) 양주에 속하였다가 조선조에는 다시 양주로 개칭한 뒤 1895년(고종 32) ...
[신천강씨] 강학수(康鶴守)
조선(朝鮮) 때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신천강씨] 강한송(康漢松)
자(字)는 절보(節甫), 호(號)는 하계(河溪). 조선(朝鮮)때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신천강씨] 강원학(康元鶴)
조선조에 현감(縣監)을 지냈다.
[신천강씨] 강인호(康仁鎬)
조선조(朝鮮朝)에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신천강씨] 강홍대(康洪大)
호(號)는 하전(荷田). 한말(韓末)에 내장원경(內藏院卿)을 지냈다.
[신천강씨] 강덕민(康德民)
자(字)는 세화(世化), 호(號)는 수양재(修養齋). 사친(事親)과 숭조(崇祖)에 효성이 지극하였고 빈민을 구제하는 등 사회의 모범(模範)이 되어, 대성문학원(大聖文學院)에서 이를 표창하였고, 경향유림(京鄕儒林)에서 사호(私號)를 문효(文孝)로 천정(薦定)하였다.
[신천강씨] 강규(康 逵)
한말(韓末)에 덕망(德望) 높은 학자(學者)였다.
[신천강씨] 강원상(康元相)
1907년(융희 1) 나인영(羅寅永)․오기호(吳基鎬) 등과 을사오적(乙巳五賊)의 암살을 계획하여 3월 권중현(權重顯)을 저격하려다가 체포되어 공모자를 밝히라는 혹독한 심문에도 불굴, 스스로혀를 끊어 대답하지 않았다. 이해 7월 나인영․전덕준(全德俊) 등과 함께 지도(智島)에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