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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양씨시조(淸州楊氏),양기(楊起)
청주양씨 연원
청주양씨의 연원(淵源)은 中國의 공손황제(公孫製帝)의 세계(世系)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의 41世孫 백교(伯橋)가 양씨의 태시조(太始祖)이다. 후한(後漢) 때 관서부자(關西夫子), 사지공(四知公)으로 일컫는 양진(楊 震. 字伯起)은 60世孫으로 본향(本鄕)이 홍농(弘農)이 어서 그 후손을 홍농양씨(弘農楊氏)라 한다.
양진(楊震)의 4...
함종어씨시조(咸從魚氏),어화인(魚化仁),함종어씨조상인물
함종어씨(咸從魚氏)의 연원(淵源)
우리 어씨(魚氏)는 본래(本來) 중국(中國)풍익(馮翊) 사람으로 남송(南宋)때에 동(東)쪽으로 난(亂)을 피(避)하여 처음에는 강원도(江原道) 강릉(江陵)에 오셨다가, 그 후(後) 평안도(平安道) 함종현(咸從縣)으로 가시어서 관향(貫鄕)을 함종(咸從)으로 하시고, 뒤에 또 칠세(七世) 중랑장공(中郞將公) 휘(諱) 준량(遵...
영월엄씨(寧越嚴氏) ,영월엄씨시조,엄임의(嚴林義),영월엄씨유래,영월엄씨조상
영월엄씨시조 및 영월엄씨유래
영월엄씨(寧越嚴氏)의 시조(始祖) 엄임의(嚴林義)는 한(漢)나라 시인(詩人) 부양(富陽 : 一名 嚴子陵先生)의 후예이며 당(唐)나라 상국(相國) 화음(華陰)의 일족(一族)이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그는 당(唐)나라 현종(玄宗 : 제 6대 임금, 재위기간 : 712~756)이 새로운 악장(樂章)을 만들어 이를 인근의 여러 나라...
함양여씨(咸陽呂氏),함양여씨시조,여어매(呂御梅),함양여씨유래,함양여씨조상인물
함양여씨시조 및 함양여씨유래(본관)
함양여씨(咸陽呂氏)의 시조(始祖) 여어매(呂御梅)는 중국(中國) 내주(萊州) 사람으로 당(唐)나라 희종(僖宗) 때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하였는데, 황소(黃巢)의 난이 일어나자 877년(신라 헌강왕 3년)에 신라(新羅)에 귀화하여 경북(慶北) 성주군(星州郡) 벽진면(碧珍面)에 정착하고 고려(高麗)에서 전서(典書)를 지...
의령여씨시조(宜寧余氏),여선재(余善才),의령여씨조상인물
의령여씨(宜寧余氏)의 연원(淵源)
의령여씨는 백제국(百濟國) 왕가의 후예인 고려조(高麗朝) 의춘군(宜春君) 여선재(余善才)공의 후손이다.
여씨 성(姓)은 환단고기(桓檀古記)에 의하면 단군세기(檀君世紀)에 여을(余乙) 여루(余婁) 두 분의 임검이 있었고 제삼세 임검 가륵(嘉勒) 십년에 예(濊)의 군장을 지내고 치안을 담당하는 여수기(余守己) 장군이 반역을...
전주연씨시조(全州連氏),연주(連珠)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연씨(連氏)는 본래 중국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 전주연씨(全州連氏)의 시조(始祖)는 고려 태조(太祖) 때 2등공신(二等功臣)인 연주(連 珠)로 전한다. 이보다 앞서 신라(新羅) 제 10 대 내해왕(奈解王)때 이벌찬(移伐찬) 진(珍) 장군이 백제와의 싸움에서 전승(戰勝)한 기록이「삼국사기(三國史記)」에 전하는데, 오늘날의 연...
염씨(閻氏)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염씨(閻氏)는 중국(中國) 태원(太原)에서 계출(系出)된 성(姓)으로 당숙후(唐叔후)의 후손이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은 땅 이름을 성(姓)으로 삼은 것이 시초(始初)가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918년(고려 태조 원년)에 염 장(閻 長)이란 사람을 의형대령(義刑臺令)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인 구
2015년...
파주염씨(坡州廉氏),파주염씨시조,염형명,파주염씨유래,파주염씨조상인물
파주염씨시조 및 파주염씨유래(본관)
파주염씨(坡州廉氏)는 서기 25년경 진한(辰韓)의 우거수(右渠帥)였던 염사치(廉斯鑡, ‘염사착‘이라고도 함)가 살기 좋다고 하는 낙랑(樂浪)으로 무리를 이끌고 이주한 후 공을 세워 성씨와 관모(冠帽) 및 전택(田宅)을 하사 받았다는 위략(魏略)과 해동역사(海東繹史)를 근거로 염사치를 최초의 득성조(...
[청주경씨] 경숙(慶 俶)
자는 자후(子厚)이다. 중종조에 사간원 정언(正言), 예조좌랑을 지내고 다시 홍문관 수찬(修撰), 이조정랑을 지낸 후 통훈대부 사헌부장령(掌令)으로 승직되었다. 이천부사로 나갔다가 중종 13년 승정원 우부승지에 올랐으나 병으로 취임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청주경씨] 경세창(慶 昌)
자는 무중(戊中)이다. 성종25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고 사간원 헌납(獻納). 훈문관 교리(校理)를 지내고 황해도 관찰사로 승임, 강원도 관찰사를 거처 사간원 대사간(大司陳), 승정원 도승지(都承旨) 한성부 좌윤(左尹)을 지내고 가선대부에 올랐으며 동지 중추원사를 지낸 후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청주경씨] 경세인(慶世仁)
자는 심중(心中)이고 호가 경재(敬齋) 또는 농은(農隱)이며 중종때 성리학자(性理學者)다 중 종 14년 현량과(賢良科)에 급제하고 홍문관저작(著 作). 박사(博士)에 올랐다. 그러나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화를 입었으며 고향인 파주 두문리(斗文里)에 은거하여 여생을 보냈다.
[청주경씨] 경연(慶 延)
자는 대유(大有)이며 세조때 출천(出天)의 효자였다. 성종 9년 사재감(司宰監) 주부(主簿)를 삼았을 때 왕이 친히 내전으로 불러 들여 효행(孝行)을 칭찬하였다. 이산(尼山)현감, 춘천(春川)부사를 지냈으며 극진한 효행으로 후에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겸 진현관제학, 지경연사, 춘추관사, 관상감사, 의금 부사에 증직 되었다. 청원군 남일면 효촌리에 그의...
[청주경씨] 경정(慶 禎)
세조때 무인으로 선전관(宣傳官)을 지내고 이시애(李施愛)난을 평정하는 공을 세웠으며 성종5년 통정대부에 승임되어 대구 도호부사에 제수되었고 다시 창원, 순천부사를 지낸 후 가선대부 중추원사(中樞院事)를 역임하였다.
[청주경씨] 경수문(慶秀文)
중종 때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처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를 지냈다.
[청주경씨] 경수량(慶秀良)
중종 26년 식년(式年) 문과에 병과(丙科) 로 급제하여 홍문관 정자(正字)에 제수되고 여러 직을 거처 호조좌랑(戶曹佐郞)을 지내고 종묘서령(宗廟署令)에 승직되었다. 후에 통정대부에 오르고 단양(丹陽) 군수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