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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舍氏)
사씨(舍氏)는 1930년도 국세조사(國勢調査) 당시 2가구가 처음으로 나타난 성씨(姓氏)로서, 당시 경기도 파주군(京畿道坡州郡)에 살고 있던 사재성(舍在成)씨의 말에 의하면, 본성(本姓)이 김씨(金氏)였는데 10대조(代祖) 김극윤(金克胤)씨가 사씨(舍氏)로 개성(改姓)했다고 하나 고증할 수 없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사씨의 본관이 부평(富平)과...
사씨(謝氏)
사씨(謝氏)는 중국(中國)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서 우리나라에는 청(淸)나라 말기에 귀화(歸化)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본관(本貫)은 진주(晋州)와 한산(韓山) 2 본으로 전한다.
그러나 상계(上系)가 실전(失傳)되어 소목(昭穆)은 밝힐 수 없고, 1930년도 국세조사(國勢調査) 당시 전북 순창(全北 淳昌)에 3가구(家口)가 있었으며, 1960년...
효령사공씨시조(孝令司空氏),사공도(司空圖),효령사공씨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사공씨(司空氏)는 중국(中國) 돈구(頓丘 : 직예성 대명도 청풍현)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 진(晋)나라 때 가신(賈辛)이란 사람이 사공(司空)의 벼슬을 지내고 왕으로부터 벼슬 이름을 성(姓)으로 하사(下賜)받은 것이 시초가 된다.
우리나라 사공씨의 연원(淵源)은 당(唐)나라 희종(僖宗) 때 예부 시랑(禮部侍郞)을 지낸 사...
삼씨(森氏)
삼씨(森氏)는 역사(歷史)가 오래된 성씨 (姓氏)로 「증보 문현비고(增補文獻備考)」 ·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 등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나 성원(姓原)과 유래(由來)에 대해서는 미상(未詳)하다.
1960년도 국세조사(國勢調査) 당시 처음으로 14가구가 나타났고,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南韓)에 총 85명이 ...
목천상씨시조(木川尙氏),상국진(尙國珍),목천상씨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상씨(尙氏)는 본래 중국(中國) 상당(上黨 : 산서성 기령도 노성현)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 당(唐)나라 덕종(德宗) 때 병마사(兵馬使)를 지낸 상가고(尙可孤)의 후예(後裔)로 전한다. 우리나라 상씨(尙氏)의 시조(始祖)는 고려 초에 목천 호장(木川戶長)을 지낸 상국진(尙國珍)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과 「목천...
남양서씨시조(南陽徐氏),서간(徐趕),남양서씨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남양서씨(南陽徐氏)의 시조(始祖) 서간(徐趕)은 중국에서 귀화(歸化)해온 8학사의 한사람으로 당성(唐城 : 남양의 별호)에 정착세거(定着世居)하면서 벼슬이 태사(太師)에 이르러 남양군(南陽郡)에 봉해졌으며, 그의 후손 후(厚)가 고려 현종(顯宗 : 제8대 왕, 재위기간 : 1009~1031) 때 대장군(大將軍)으로 거란(契丹)의 침입...
남평서씨(南平徐氏),남평서씨시조서호(徐灝),남평서씨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남평서씨(南平徐氏)은 이천 서씨(利川徐氏)에서 분적(分籍)된 계통으로 아간공(阿干公) 서신일(徐神逸)의 원손(遠孫) 서호(徐灝)를 시조(始祖)로 받들고 있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호(號)는 누대(累代)로 남평(南平)에 세거(世居)해온 사족(士族)의 후예로, 그의 아들 효당(孝堂)이 조선조(朝鮮朝)에서 전생서 판관(典牲署判官)을 ...
[신천강씨] 강후건(康厚健)
자(字)는 배근(培根), 호(號)는 송파(松坡). 교궁(校宮)에서 경전(經傳)을 연수(硏修)하여 그의 깊은 뚯울 관철하였고, 빈민(貧民)을 구휼하고자 사재(私財)를 들여 시혜(施惠)하였으므로 그의 송덕(頌德)이 오래도록 전한다. 81세의 고령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 에 올랐다.
[신천강씨] 강용석(康用錫)
자(字)는 경번(景蕃), 호(號)는 이의정(二宜亭). 조선조(朝鮮朝)에 진사(進士)였다.
[신천강씨] 강용후(康用候)
자는 덕승(德承), 호는 눌헌(訥軒). 조선 때 진사(進士)였다.
[신천강씨] 강용량(康用良)
자(字)는 경우(慶遇), 호(號)는 와운(臥雲). 조선조(朝鮮朝)의 학자(學者)로 학행(學行)이 뛰어나 수 차례 벼슬에서 천거되었으나 사양하고 평생 학문에 전념하였다. 사후(死後) 공조 참의(工曺參議)에 추증(追贈), 연악서원(淵岳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신천강씨] 강만완(康萬完)
자(字)는 안전(安全), 호(號)는 보암(保庵). 조선에서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신천강씨] 강우량(康友諒)
조선(朝鮮) 때 예조 정랑(禮曺正郞)을 지냈다.
[신천강씨] 강치경(康致慶)
가장세전(家藏世傳) 보물(寶物)인 이태조(李太祖) 친필(親筆)의 왕지(王旨)를 영조(英祖)에게 올리니 영조가 보고 친필(親筆)로 발문(跋文)하였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다.
[신천강씨] 강규(康 逵)
자(字)는 중홍(仲鴻), 호(號)는 정전(井田). 학행(學行)이 탁중하여 당대의 도백(道伯)들이 수 차례 천거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다가 숭녕전(崇寧殿)과 강릉참봉(康陵參奉)을 지냈으며 수직(壽職)으로 자헌대부(自獻大夫)에 올랐다. 저서(著書)로「사서강설(四書講說)」․「역대편년(歷代編年)」․「역학전의고(易學傳義攷)」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