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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복씨시조(沔川卜氏),복지겸(卜智謙),면천복씨조상인물
면천복씨(沔川卜氏)의 유래
복성(卜姓)은 원래 중국의 중원(中原)에서 기원하였는데 예기(禮記)에 의하면 중국 고래(古來)로 부터 대신(大臣) 성현(聖賢) 대상(大常) 태자대전(太子大傳) 대장군(大將軍)등으로 봉직(奉職)한 선현(先賢)들이 근 삼십명에 가까워 더 열거치 못하고 특히 복상(卜商 자는 子夏)이란 분은 위인(衛人)으로 문과반열(文科班烈)로써 주역...
하음봉씨시조(河陰奉氏),봉우(奉佑),하음봉씨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하음봉씨시조(河陰奉氏 始祖) 봉우(奉佑)는 고려 인종(仁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정당문학(政堂文學)과 위위시경(衛尉寺卿)을 지내고 좌복야(左僕射)에 올라 하음백(河陰伯)에 봉해져서 식읍(食邑)을 하사(下賜)받았다.
「하음봉씨을축세보(河陰奉氏乙丑世譜)」에 그의 출생에 대한 기록이 다음과 같이 전한다. 서기 1106년(고려 예종...
제주부씨(濟州夫氏),부을나(夫乙那),제주부씨조상인물
제주부씨의 연원
제주부씨(濟州夫氏)의 관향은 옛 탐라국(耽羅國)의 고토(故土)인 제주(濟州)이다.
시조 부을나(夫乙那)는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와 함께 제주 한라산 북녁기슭 모흥혈(毛興穴:三姓穴)에서 용출하여 탁라(乇羅)를 열었다. 이 삼신인(三神人)은 훗날 바다건너 벽랑국(碧浪國)으로 부터 오곡의 씨앗과 육축을 가지고온 삼공주를 맞아 각각...
농서비씨(龍西丕氏)
비씨(丕氏)은 선성(宣城 : 지금의 안휘성 동남쪽에 있는 도시)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이며 주(周)나라 양왕 (襄王) 때 사림인 비 표(조 約)의 후예(後裔)로 전한다. 농서(龍西)는 지금의 중국(中國) 감숙성 임조부(甘肅省 臨조府)와 공창부(鞏昌府)의 서쪽에 걸쳐 있었던 진한시대(진 漢時代)의 군(郡) 이름으로 서역(西域)에 가까이 위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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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빙씨시조(慶州冰氏),빙여경(冰如鏡),경주빙씨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우리나라 빙씨(冰氏)의 연원(淵源)은 중국(中國) 명(明)나라 출신인 빙여경(冰如鏡)이 1465년(명나라 헌종 성화 13)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문연학사(文淵學士)와 예부 시랑(禮部侍郞)을 지내고, 내각한림(內閣翰林)에 이르러 1467년(세조 13) 왕명(王命)으로 8학사와 더불어 동래(東來)하여 우리나라에 정착한 것이 시초(始初)...
대구빈씨(大邱彬氏)
시조 및 본관의 유래(始祖 本貫田來)
대구(大邱)는 영남지방(嶺南地方) 중앙부에 위치한 행 정중심지로 본래 신라시대(新羅時代)에 달구화현(達丘火縣) 또는 달불성(達弗城)으로 불리우다가 757년(경덕 왕 16)에 대구(大丘)로 개칭되고, 1419년(세종 1) 대구 군(大丘郡)으로 승격되었다. 대구(大丘)가 대구(大邱)로 개칭된 것은 지금부터 약 190년 전...
수성빈씨시조(壽城賓氏),빈우광(賓宇光)
시조 및 본관의 유래(始祖 本貫由來)
빈씨(賓氏)는 중국(中國)에서 계출된 성씨(姓氏) 로 정확한 연원(淵源)은, 알 수 없고. 「조선씨족통보(朝鮮 氏族統譜)」의 기록에 의하면 주(周)나라 경왕(景王 : 기 원전 544-521) 때 대부(大夫)를 지낸 빈골주(賓骨周)의 후손 빈모가(賓牟賈)가 노(魯)나라에서 성인(聖人) 공자 (孔子)를 시중(侍中)하였다...
청주사씨시조(靑州史氏),사요(史繇),사씨조상인물
청주사씨시조
사씨(史氏)는 중국 경조(京兆 : 협서성 관중도 장안현)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 주(周)나라 때 사람인 사 질(史 佚)의 후예(後裔)가 관직(官職)의 이름을 따서 성으로 삼은 것이 시초(始初)가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씨(史氏)는 산동성 청주(山東省靑州) 출신인 사 요(史 繇)가 명(明)나라 개국공신(開國功臣)으로 예부 상서(禮...
[신천강씨] 강흔(康 訢)
호(號)는 장봉(莊峰). 어릴 때 부친(父親)을 잃고 장성한 후 추복(追服)으로 시묘(侍墓)하였으며, 효성(孝誠)이 지극하여 모친(母親)을 극진히 봉양햇다. 1624년(인조 2) 이 괄(李 适)의 난 때는 의병(義兵)을 모아 북진하다가 난이 평정(平定)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군량을 나라에 바쳤다. 고창(高敞) 신산사(新山祠)에 제향되었다.
[신천강씨] 강기종(康起宗)
호(號)는 호은(湖隱), 흔(訢)의 아들. 병자호란 때 부친(父親)의 명(命)을 받들어 의병(義兵)을 일으켜 청주(淸州)까지 나갔으나 강화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와 송림산(松林山) 꼭대기에 단(壇)을 모아 통곡하며「존주음(尊周吟)」과「음송시(吟松時)」를 비롯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뒤에 나라에서 병절교위(秉節校尉)를 제수 하고 호조 참의(戶曹參議)를 추증...
[신천강씨] 강효인(康孝仁)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공을 세우고 전사(戰死) 했다.
[신천강씨] 강응철(康應哲)
1562 (명종 17) ~ 1635 (인조 13) 자는 명보(明甫), 호는 남계(南溪).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병(鄕兵)을 모집하여 상주(尙州)를 지켰고, 후에 정기룡(鄭起龍)의 의병과 합세, 각지에서 왜병을 무찔렀다. 벼슬은 찰방(察訪)에 이르렀으나 광해군(光海君)의 난정(亂政)에 분개하여 은퇴, 향리에서 독서와 저술로 일생을 보냈...
[신천강씨] 강우성(康遇聖)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병에게 붙잡혀 일본이 끌려간 후 10년만에 귀국, 일본어와 일본 풍속에 익숙하여 왜학훈도(倭學訓導)가 되었으며, 뒤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1670년(현종 11) 에 간행된 그의 「첩해신어(捷解新語)」는 1678년(숙종 4) 이후부터 역과(譯科)의 왜학(倭學) 시험과목으로 사용되었다.
[신천강씨] 강승길(康承吉)
자(字)는 연상(延祥), 호(號)는 금호(錦湖). 조선(朝鮮)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신천강씨] 강득유(康得維)
조선 때 교위(校尉)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