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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박씨시조(淳昌朴氏),박두간(朴斗幹),순창박씨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순창 박씨(淳昌朴氏)는 고려조에서 순창군(淳昌君)에 봉해진 박제세(朴濟世)의 후손으로 전해지나 상계(上系)가 실전(失傳)되어 조선 때 훈련원 첨정(訓練院僉正)을 역임한 박두간(朴斗幹)을 일세조(一世祖)로 계대(繼代)하고 선조(先祖)의 봉군지(封君地)인 순창(淳昌)을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다.
순창(淳昌)은 전라북도(全羅北道) 남...
순천박씨(順天朴氏),순천박씨시조,박영규(朴英規),순천박씨유래,순천박씨조상인물
순천박씨시조 및 순천박씨유래
순천박씨(順天朴氏)의 시조(始祖) 영규(英規)는 신라 제54대 경명왕(景明王)의 일곱째 아들인 강남대군(江南大君) 언지(彦智)의 아들이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그는 후백제(後百濟) 견훤(甄萱)의 사위로 태조(太祖)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 창업(創業)에 공(功)을 세워 개국공신(開國功臣)에 책록되고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
여주박씨시조(驪州朴氏),박지석(朴之碩),여주박씨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여주박씨(驪州朴氏)의 시조(始祖) 박지석(朴之碩)은 신라 제54대 경명왕(景明王:재위기간:917~924)의 맏아들인 밀성대군(密城大君)의 20세손으로 전(傳)한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 환(奐)이 여주(驪州)에 살다가 함경남도 함흥(咸鏡南道咸興)으로 이거(移居)하여 그 곳에서 정착(定着)하게 되었으며, 그는 고려 말에 ...
영암박씨시조(靈岩朴氏),박항(朴恒),영암박씨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영암박씨(靈岩朴氏)는 신라(新羅) 경명왕(景明王:제54대 왕, 재위기간:917~924)의 장자(長子)인 밀성대군(密城大君) 언침(彦忱)의 10세손으로 고려조(高麗朝)에서 좌상(左相)을 지낸 항(恒)을 중시조(中始祖)로하여 세계(世界)를 계승하고 있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중시조 항(恒)의 아들 통(通:초명은 천흘)이 고려 명종(明...
영해박씨(寧海朴氏)는 신라 제5대 파사왕의 5세손인 파진찬 물품의 아들 박제상(堤上)을 시조로 받들고 있다
영해박씨시조 및 본관의 유래
영해(寧海)는 경상북도(慶尙北道) 동북부(東北部)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우시군(于尸郡)을 통일신라(統一新羅) 때 유린군(有隣郡)으로 고쳤고, 고려(高麗) 초에 예주(禮州)로 하였다가 1259년(고종 46) 덕원소도호부(德原小都護府)로 승격하였다.
그후 예주로 다시 고치고 1310년에 영해부(寧海府)...
운봉박씨시조(雲峰朴氏),박중화(朴仲華),운봉박씨조상인물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운봉박씨(雲峰朴氏)의 시조(始祖) 박중화(朴仲華)는 신라 경명왕(景明王)의 맏아들인 밀성대군(密城大君) 언침(彦沈)의 11세손으로 고려 말에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를 지냈으며, 그의 현손(玄孫) 종우(從愚)가 조선 태종(太宗)의 장녀 정혜옹주(貞惠翁主)와 혼인하여 운성군(雲城君)에 봉해지고 세종(世宗) 때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
울산박씨시조(蔚山朴氏),박윤웅(朴允雄)
울산박씨의 연원
1672년 (현종13) (창간보) 수보시 序文에 「우리 東邦 의 朴氏는 新羅 始祖王부터 시작되었고, 그 번창함이 또한 盛하고 悠久하다 또 말하기를 根源은 가장 오래되어 分派가 되고 貫鄕도 따라서 많이 갈라졌다(吾東之有朴氏 自新羅 始祖王 基蕃旦盛久矣 又曰朴之源 最久派分支別 封貫基衆>」 고 하였다.
울산박씨 시조는 홍려백 시호 장무공 박윤...
[신천강씨] 강탁(康 度)
고려 때 충원백(忠原伯)에 봉하여졌다.
[신천강씨] 강윤휘(康允暉)
자(字)는 광길(光吉), 호(號)는 진암(震庵), 시호(諡號)는 정숙(靖肅).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판도판서(版圖判書)․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등을 역임하였으며, 그후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다. 제주(濟州) 조천서원(朝天書院)에 제향되었다.
[신천강씨] 강순룡(康舜龍)
호(號)는 화곡(化谷), 시호는 문원(文元), 상산부원군(象山府院君) 윤성(允成)의 아들. 원나라에 들어가 숭문감소감(崇文監少監)을 지내고 1354년(공민왕 3) 본국에 돌아와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를 거쳐 이해 찬성사(贊成事)에 오르고 은성부원군(銀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신천강씨] 강득룡(康得龍)
시호(諡號)는 안정(安靖).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추성좌리공신(推誠左理功臣)에 오르고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첨의정승(僉議政丞)을 역임하였으며, 안릉부원군(安陵府院君)에 봉하여졌다.
[신천강씨] 강호문(康好文)
자는 자야(子野), 호는 매계(梅溪). 시문(詩文)에 능했으며, 1362년(공민왕 11) 문과(文科)에 급제, 뒤에 판전교시사(判典敎侍事)에 이르렀다. 부인 문씨(文氏)는 1388년(우왕 14) 왜적(倭賊)이 쳐들어왔을 때 왜적에게 붙들려 가던 중 순결을 지키기 위해 절별에서 뛰어내려 탈출, 열녀(烈女)라는 칭송을 받았다.
[신천강씨] 강원기(康元紀)
호(號)는 봉호당(鳳湖堂), 시호(諡號)는 문헌(文獻). 조선(朝鮮) 때 좌부승지(左副承旨)를 역임하였다.
[신천강씨] 강영(康 永)
자(字)는 구방(久芳), 호(號)는 영암(瀛巖). 조선 때 문과에 급제한 후 한림학사(翰林學士)등을 거쳐 전라 감사(全羅監司)에 이르렀다. 북제주(北齊州)의 조천서원(朝天書院)에 제향되었다.
[신천강씨] 강이(康 理)
조선(朝鮮) 때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