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 27860건, 284/1858 페이지
[순흥안씨] 안사오(安嗣吳)
자(字)는 선술(善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부친(父親) 안대중(安大重)과 함께 의병으로 활약하다가 남원(南原) 여원산(女院山)에서 왜적(倭敵)에 대항하다 순절(殉節)하였다.
[함창김씨] 김규오(金奎五)
1729 (영조 5) ~ 1789 (정조 13) 자(字)는 경휴(景休), 호(號)는 최와(最窩). 윤봉구(尹鳳九)의 문인. 1774년(영조 50)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한평생 공부에만 전심, 만년에는 경서(經書)로써 여생을 보냈다.
[순흥안씨] 안사제(安嗣俤)
자(字) 여원(汝源), 호(號)는 청류재(聽流齋), 1582년(선조 15)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정의 판관(靖義判官)에 이르렀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兄) 안사오(安嗣吳), 조경남(趙慶男) 등과 더불어 의병(義兵)을 일으켜 왜병(倭兵)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웠다. 또한 다시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나니 안신손(安信孫)과 함께 창의(倡義)하여 토적(討賊...
[순흥안씨] 안지(安 志)
자(字)는 사상(士尙), 호(號)는 농애(農厓), 안명세(安名世)의 조카. 선조(宣祖) 때 학자로 9세에 이미「주역(周易)」에 통했고, 시문에 뛰어났다.
[순흥안씨] 안덕린(安德麟)
1563(명종 18)~1609(광해군 1) 자(字)는 인서(仁瑞), 호(號)는 사촌(沙村), 판서 안숭선(安崇善)의 6대손, 호군(護軍) 안총(安聰)의 아들. 류성룡(柳成龍)․정구(鄭逑)의 문인. 1591년(선조 24) 성균관 장의(成均館掌議)로 대신들의 실책을 상소하여 조정을 소연케 했다. 1603년(선조 36)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풍기(豊基)에서...
[순흥안씨] 안몽윤(安夢尹)
1571(선조 4)~1650(효종 1) 자(字)는 상경(商卿), 직장(直長) 세복(世復)의 아들. 음보(蔭補)로 군직(軍職)에 올라 1592년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웠고, 전주(全州) 분조(分朝)에서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선전과(宣傳官)이 되었다. 1599년(선조 32) 부장(部將)으로 창덕궁(昌德宮)을 호위했으며, 1601년 남포 현감(藍浦縣監), 160...
[순흥안씨] 안영남(安潁男)
?~1641(인조 19). 자(字)는 여오(汝吳), 참의(參議) 요경(堯卿)의 현손(玄孫), 목사(牧使) 진(璡)의 아들.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경기도 수군절도사(京畿道水軍節度使)를 거쳐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에 정주 목사(定州牧使)로서 능한산성(凌漢山城)을 수비하다가 성이 함락되자 자결했다.
[해주김씨] 김응(金 膺)
조선조에 승의부위(承議副尉)에 이르렀다.
[해주김씨] 김세광(金世光)
조선(朝鮮) 때 선무랑(宣務郞)에 이르렀다.
[순흥안씨] 안극함(安克諴)
안극함(安克諴): ?~1641(인조 19) 자(字)는 자성(子誠), 병조 참판(兵曹參判) 준(浚)의 아들. 1625년(인조 3) 무과(武科)에 급제,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이 입(李 立)과 함께 소위포(少爲浦)에서 항전, 많은 전공을 세웠다. 이어 명나라 장군 모문룡(毛文龍)을 도와 활약, 그 공으로 훈련원 부정(訓練院副正)이 되고, 모...
[해주김씨] 김희윤(金熙潤)
조선(朝鮮)에서 장사랑(將仕郞)에 올랐다.
[순흥안씨] 안경달(安景達)
자(字)는 이회(而會), 호(號)는 풍계(楓溪).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의병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이미 강화(講和)가 성립되자 끝내 울분을 견디지 못해 화병(火病)으로 죽었다. 그후 이조 참의(吏曹參議)에 추증(追贈)되었으며 남천사(藍川祠)에 제향(祭享)되었다.
[해주김씨] 김만겸(金萬兼)
조선 때 상호군(上護軍)을 역임하였다.
[순흥안씨] 안응창(安應昌)
자(字)는 흥숙(興叔), 호(號)는 우졸재(愚拙齋), 안몽윤(安夢尹)의 아들. 장현광(張顯光)의 문인. 음보(蔭補)로 부사(府使)에 이르고, 학문으로 천거를 받아 봉림대군(鳳林大君 : 효종)의 사부(師傅)가 되었으며, 많은 저술을 남겼다.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에 추증(追贈), 순원군(順原君)에 추봉(追封)되었다.
[해주김씨] 김계희(金啓熙)
조선조(朝鮮朝)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