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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박씨] 박세통(朴世通)
인근(仁謹)의 아들. 고려 고종(高宗) 때 출생하여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역임하였으며, 통해군(通海君)에 봉해졌고 중영공신당(重營功臣堂)에 배향(配享)되었다.
[영해박씨] 박원계(朴元桂)
1282 (충렬왕 8) ~ 1348 (충숙왕 4) 자(字)는 순규(舜圭), 관(琯)의 아들. 권 부(權溥)의 문인. 19세에 문과(文科)에 급제, 전주목(全州牧)의 사록(司錄) 겸 장서기(掌書記)가 되고, 뒤에 권지전교교감(權知典校校勘)을 거쳐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로 충선왕이 연경(燕京)에 있을 때 충실히 모셔 사랑을 받았다.
1335년(충숙왕 복위 ...
[영해박씨] 박홍무(朴洪茂)
통해군(通海君) 세통(世通)의 아들. 고려(高麗)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 등을 역임 하였고 영해(寧海)의 운계서원(雲溪書院)과 양동(楊東)의 숭례사(崇禮 祠)에 배향(配享)되었다.
[영해박씨] 박감(朴 憾)
호(號)는 역옹(轢翁), 밀직사(密直使) 홍무(洪茂)의 아들. 고려 충숙왕(忠肅王) 때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좌복야(左僕射) 등을 역임하였고 강양백(江陽伯)에 봉해졌다.
[영해박씨] 박구(朴 球)
자(字)는 경옥(景玉), 호(號)는 돈옹(豚翁), 백감(伯減)의 증손. 고려 때 권농병마단련판관(權農兵馬團鍊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영해박씨] 박경(朴 經)
1350 (충정왕 2) ~ 1414 (태종 14) 시호(諡號)는 양정(良靖), 시중(侍中) 감(減)의 증손. 음보(蔭補)로 기용되어 1379년(우왕 5)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역임했다. 조선 건국 후 1395년(태조 4) 대사헌에 오르고, 1402년(태종 2) 총제(摠制)로 재직중 사신을 영접하지 않은 죄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으나 1405년 개성...
[영해박씨] 박자청(朴子靑)
1357 (공민왕 6) ~ 1423 (세종 5) 시호(諡號)는 익위(翼魏), 도총관 장검(張儉)의 아들. 내시(內侍)에서 낭장(郎將)이 되었고, 1392년 조선이 개국되자 중랑장(中郞將)으로 승진, 이듬해 입직당번(入直當番)으로서 궁문(宮門)을 지킬 때 왕제 의안대군(義安大君)이 부름받은 일도 없이 입궁하려는 것을 구타 당하면서까지 제지하여 태조의 신임을 ...
[영해박씨] 박창령(朴昌齡)
1377 (우왕 3) ~ ? 자(字)는 원길(元吉). 조선(朝鮮) 때 평양 서윤(平壤庶尹)을 역임하였고,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
[영해박씨] 박우(朴 愚)
자(字)는 경로(敬魯), 호(號)는 추암(秋庵), 대사헌(大司憲) 양(揚)의 아들. 조선 성종(成宗) 때 통훈대부(通訓大夫)로 태화현감(泰化縣監)을 역임하고, 양동(楊東)의 숭례사(崇禮祠)에 배향되었다.
[영해박씨] 박낭(朴 浪)
1394 (태조 3) ~ ? 평양 서윤(平壤庶尹) 창령(昌齡)의 아들. 조선 때 병조 정랑(兵曹正郞)·이조 참의(吏曹參議) 등을 역임하였다.
[영해박씨] 박도(朴 渡)
1396 (태조 5) ~? 평양 서윤(平壤庶尹) 창령(昌齡)의 둘째 아들. 판중추부사(判中樞府使)에 재임중 단종(端宗)이 세조(世祖)에게 왕위를 양도할 때 김시습(金時習:매월당)·조상치(曺尙治:정재) 등 9현(賢)과 함께 김화 초막동(金化草幕洞)에 은둔하여 단종 복위를 모의한 7의사(義士)의 한 사람으로 구은사(九隱祠)에 배향(配享)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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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박씨] 박제(朴 濟)
1399 (정종 1) ~ ? 호(號)는 경은(坰隱), 창령(昌齡)의 셋째 아들. 예조 좌랑(禮曹佐郞)에 재직중 단종 복위(端宗復位)를 모의하였던 7의사(義士)의 한 사람으로 구은사(九隱祠)에 배향(配享)되었다.
[영해박씨] 박치안(朴致安)
1380 (우왕 6) ~ ? 자(字)는 공기(公器), 호(號)는 송촌(松村),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 진(璡)의 아들. 숭정대부(崇政大夫)·펀즁츄뷰서(判中樞府事)에 봉해졌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 힘써 문장(文章)으로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
[영해박씨] 박규손(朴奎孫)
1426 (세종 8) ~ ? 호(號)는 탁영재(濯纓齋), 병조 정랑(兵曹正郞) 낭(浪)의 아들. 예빈 향(禮賓鄕)에 재직중 단종 복위(端宗復位)를 도모하다가 실패하였던 7의사(義士)의 한 사람으로 구은사(九隱祠)에 배향(配享)되었다.
[영해박씨] 박효손(朴孝孫)
1428 (세종 10) ~ ? 자(字)는 자경(子慶), 호(號)는 운와(雲窩), 병조 정랑(兵曹正郞) 낭(浪)의 둘째 아들. 형조 참판(형조참판(刑曹參判)에 있을 때 단종복위(端宗復位)를 도모하다 실패하였던 7의사(義士)의 한 사람으로 구은사(九隱祠)에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