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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목씨] 목시민(睦時敏)
조선 때 예조 좌랑(禮曹佐郞)을 역임하였다.
[사천목씨] 목종하(睦宗夏)
조선 때 판관(判官)을 지냈다.
[사천목씨] 목선항(睦善恒)
조선조에 예조 정랑(禮曹正郞)을 역임하였다.
[사천목씨] 목조수(睦조洙)
조선 때 병조 정랑(兵曹正郞)을 지냈다.
[사천목씨] 목만중(睦萬中)
1727 (영조 3) ~ ? 자는 공겸(公兼), 유선(幼選), 호는 여와(餘窩), 조우(祖禹)의 아들. 1759년(영조 35)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도사(都事)를 지내고 1786년(정조 10)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장원, 1801년(순조 1) 대사간(大司諫)으로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영의정(領議政) 심환지(沈煥之)와 함께 남인(南人)...
[사천목씨] 목용석(睦用錫)
조선 때 호조참의(戶曹參議)를 역임하였다.
[남평문씨] 문익(文 翼)
시호(諡號)는 경절(敬節), 고려(高麗) 문종조(文宗祖)에 문과(文科)에 급제, 1908년(숙종 3) 좌․우찬선대부(左․右贊善大夫)를 거쳐 급사중(給事中)에 아르렀다. 이듬해 고진(告奏) 겸 밀진사(密進使)로서 원자(元子) 책봉(冊封)을 청(淸)하려고 요(遼)나라에 다녀왔다. 1102년(숙종 7) 직문하성(直門下省)으로 서북면 병마사(西北面兵馬使)가 되고 ...
[남평문씨] 문공인(文公仁)
? ~ 1137 (인종 15) 초명(初名)은 공미(公美), 시호(諡號)는 충의(忠懿), 고려 때 문과(文科)에 급제, 1115년(예종 10) 호부시랑(戶部侍郞)으로 사은(謝恩) 겸 진봉부사(進奉副使)가 되어 송(宋)나라에 다녀왔다.
우부승선(右副承宣)을 거쳐 1117년(예종 12) 전중 소감(殿中少監)․우승선 겸 태자 우찬선(右承宣兼太子右贊善), 112...
[남평문씨] 문공원(文公元)
1084 (선종 1) ~ 1156 (의종 10) 시호(諡號)는 정경(貞敬), 우산기상시(右散騎常寺) 익(翼)의 아들. 음보(蔭補)로 기용되고, 예종(睿宗) 때 문과(文과)에 급제, 인종(仁宗)때 우정언(右正言)․지제고(知制誥)에 발탁, 1130년(인종 8)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 이주연(李周衍)등과 함께 시폐(時弊)를 상언(上言)하...
[남평문씨] 문공유(文公裕)
자(字)는 항적(亢迪), 시호(諡號)는 경정(敬靖), 우상기상시(右散騎常寺) 익(翼)의 아들, 판사(判事) 공인(公仁)의 아우. 1122년(예종 17) 합문 지후(閤門祗侯)로서 이자겸(李資謙)의 모함으로 형공인과 함께 유배, 뒤에 복직되어 1129년 금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욌다. 1133년 시어사(侍御史)로서 묘 청(妙 淸)의 도참설(圖讖說)에 현혹된 인종(...
[남평문씨] 문극겸(文克謙)
1122 (예종 17) ~ 1189 (명종 19) 자(字)는 덕병(德柄), 시호(諡號)는 충숙(忠肅), 병부 상서(兵部尙書) 공유(公裕)의 아들. 음보(蔭補)로 산정도감판관(刪定都監判官)이 되어 여러번 문과(文科)에 낙방하자 상소, 남삼(藍衫)으로는 3회로 한정된 응시 횟수를 5회로 개정케하고 의종(毅宗) 때 마침내 급제했다. 좌정언(左正言)이 되자 환자(...
[남평문씨] 문후식(文候軾)
시호(諡號)는 충렬(충렬). 1177년(명종 7) 문과(文과)에 급제하여 한림원 학사(翰林院學士)로 여러 관직을 거쳐 합문 지후(閤門祗侯)․이부시랑(吏部侍郞)․전중 내급사(殿中內給事)를 역임하고, 1198년(신종 1)동북면 지병마사(東北面知兵馬使)가 되었다.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상주국(上柱國)․평장사(平章事)에 추증 되었다.
[남평문씨] 문유필(文惟弼)
? ~ 1228 (고종 15) 시호(諡號)는 효혜(孝惠), 평장사(平章事) 극겸의 아들. 1220년(고종 7) 안서 부사(安西副使)로 좌천, 이듬해 수사공(守司空)․좌복야(左僕射), 1222년(고종 9)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가 되고 1227년 (고종 14) 참지 정사(參知政事)․판예부사(判禮部事)에 올랐다.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상주국(上柱國...
[남평문씨] 문탄(文 誕)
시호(諡號)는 충익(충익). 고려 때 제학(제학)을 지냈다.
[남평문씨] 문착(文 言卓)
호(號)는 남제(南濟). 명종(明宗) 초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상주국 평장사(上柱國平章事)를 지내고, 1194년(명종 24) 대제학(大提學)으로 왕(王)의 명령(命令)을 받고 탐라(耽羅 : 제주도)에 가서 예악(禮樂)과 문물(文物)을 선화(宣化)케 해서 가나군(加那君)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