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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맹씨] 맹양대(孟養大)
조선 때 정언(正言)을 역임하였다.
[신창맹씨] 맹용대(孟龍大)
조선조에 중추부사(中樞府使)를 지냈다.
[신창맹씨] 맹유룡(孟儒龍)
조선 때 좌랑(佐郞)을 역임하였다.
[신창맹씨] 맹흠규(孟欽圭)
조선 때 집의(執義)를 지냈다.
[신창맹씨] 맹도식(孟道植)
조선에서 정언(正言)을 역임하였다.
[신창맹씨] 맹노술(孟魯述)
자(字)는 득여(得汝). 1846년(헌종 12)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 급제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계속 학업(學業)에만 정진하였다.
[신창맹씨] 맹영재(孟英在)
1894년(고종 31) 동학란(東學亂)으로 치안(治安)이 혼란해지자 의병(義兵)을 모아 경기(京畿)․충청(忠淸)․강원(江原) 일대의 치안(治安)을 유지하였고, 그후 지평 현감(砥平縣監) 때 민비시 해사건(閔妃弑害事件)이 일어나자 다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日本軍)과 도처에서 항전하다가 순사(殉死)하였다.
[사천목씨] 목덕창(睦德昌)
동정(同正) 효기(孝基)의 아들. 고려 때 교위(敎委)를 지낸 후 1269년(원종 10) 기관(記官) 최 탄(崔坦)과 한 신(韓愼)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영주수(靈州守 : 지금의 의주)로 성(成)을 지키다가 순절하였다.
[사천목씨] 목준평(睦俊平)
고려 때 조봉대부(朝奉大夫)로 비서윤(秘書尹)을 지내고 보문각직제학(寶文閣直提學)에 올라 치사(致仕)하였다.
[사천목씨] 목군경(睦君慶)
고려조에서 중현대부(中顯大夫)로 흥위위 대호군(興威衛大護軍)을 역임하였다.
[사천목씨] 목충달(睦忠達)
고려 때 성균관(成均館)의 진사(進士)를 지냈다.
[사천목씨] 목손검(睦孫儉)
고려 때 신호위 정용 낭장(신虎衛精勇郎將)을 지냈다.
[사천목씨] 목인길(睦仁吉)
? ~ 1380 (우왕 6) 공민왕(恭愍王)이 원나라에 있을 때 중랑장(中郞將)으로 시종(侍從), 그 공으로 왕이 즉위하자 1등공신이 되고, 1359년(공민왕 8) 기철(奇轍)의 일당을 제거하여 1등 공신이 되었다. 후에 병부 상서(兵部尙書)에 올라 홍건적(紅巾賊)의 난 때 왕의 남행(南行)을 호종,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 로 1363년 다시 공신(功臣)이 ...
[사천목씨] 목진공(睦進恭)
고려말 보승별장(保勝別將)을 지내고 조선이 개국하자 이조(吏曹) 및 공조(工曹)의 좌랑(佐郞)을 거쳐 예․병․형․공(禮兵刑工) 4조(四曹)의 참의(參議)와 승정원(承政院) 대언(代言)을 지냈다. 후에 경기, 강원도 도관찰사(京畿江原道觀察使), 한성부윤(漢城府尹)을 지낸 후 1422년(세종 4) 가정대부(嘉靖大夫)로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올랐다.
[사천목씨] 목보남(睦寶男)
조선 때 서천 군수(舒川郡守)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