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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조씨] 조효례(趙孝禮)
조선(朝鮮) 때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지냈다.
[함안조씨] 조금호(趙金虎)
(1445~1533) 자 : 수옹(壽翁) 세조 11년(1466년) 무과에 급제, 세조 12년 서정(西征)에 종사하여 공을 세웠다.
경상우도(慶尙右道) 수군(水軍) 우후(虞候) 제수, 장기, 고성, 거제의 삼현감(三縣監). 영흥부통판(永興府通判), 단청군수,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제수. 양주목사, 광주, 서흥에 전임.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겸 내금위장...
[함안조씨] 조순(趙 舜)
(1465~1527) 자 : 요경(堯卿) 호 : 옥봉(玉峰) 성종 17년(1486년) 생원(生員), 진사(進士) 양시(兩試)에 합격. 1492년 문과에 합격. 승문원(承文院)에 선임. 홍문관교리, 의정부 사인(舍人), 사헌부 장령(掌令) 집의(執義), 군기시정(軍器寺正), 승정원(承政院) 동부승지(同副承旨), 충청부사, 김해부사, 중종 17년(1522년) ...
[함안조씨] 조삼(趙 參)
(1473~ ? ) 자 : 노숙(魯叔) 호 : 무진정(無盡亭) 성종 20년(1489년)에 진사. 1507년 문과에 급제. 함양, 대구, 성주, 창원, 상주 등 다섯 고을의 관장과 통정대부(通政大夫)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겸 춘추관(春秋館) 편수관(編修官) 등을 역임하였다.
[함안조씨] 조임도(趙任道)
(1585~1664) 자 : 덕용(德勇) 호 : 간송당(澗松堂) 인조조(仁祖朝)에서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공능참봉(恭陵參奉). 대군사부(大君師傅). 효종(孝宗) 때 공조좌랑(工曹佐郞)을 제수받았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증통선랑사헌부지평(贈通善郞司憲府持平)하였다. 경종 원년(1721년) 함안군 산인면 송정리 송정서원(松汀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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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조씨] 조수천(趙壽千)
(1482~1553) 자 : 중수(仲叟) 호 : 북계(北溪) 연산군 9년(1503년) 무과에 급제, 1506년 선전관(宣傳官)으로 중종반정(中宗反正)에 참여하여 정국원종일등훈(靖國原從一等勳)의 녹권전지(錄券傳旨)가 내렸으며, 함흥, 밀양부사와 내금위장(內禁衛將), 충청병마절도사(忠淸兵馬節度使),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지냈다.
[함안조씨] 조붕(趙鵬)
(1534~1598) 자 : 대익(大翼) 무과에 급제. 선조 31년(1598년) 정유재란때 훈련부장으로 왜적과 싸우다 순절(殉節)하였다. 증호조참의(贈戶曹參議)) , 증가선대부병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贈嘉善大夫兵曹判書兼同知義禁府事)로 가증(加增) 하였다.
[함안조씨] 조탄(趙 坦)
(1552~1612) 자 : 극평(克平) 호 : 도암(韜巖) 선조 36년(1603년) 무과에 급제. 임진왜란에 의병을 그느리고 곽재우 선생을 따라 화왕산성(火旺山城)에 들어가 왜적을 수없이 무찔렀다. 임진왜란 후 녹권전지(錄券傳旨)를 받았는데 거기에는 선무원종훈(宣武原從勳) 이등공신(二等功臣)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 겸 절충조방장군(折衝助防將軍)이라고 쓰여...
[함안조씨] 조방(趙 垹)
(1557~1638) 자 : 극정(克精) 호 : 두암(斗巖) 임진왜란때 가형이신 탄(坦)어른과 조카인 형도(亨道), 동도(東道) 공들과 같이 화왕산성에 들어가 곽재우와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적을 물리쳤다. 증가선대부호조참판(贈嘉善大夫戶曹參判) 하였다.
[함안조씨] 조종도(趙宗道)
(1537~1597) 자 : 백유(伯由) 호 : 대소헌(大笑軒) 명종 13년(1558년) 생원시에 합격. 안기도찰방(安奇道察訪). 상서원직장(尙瑞院直長)․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 장례원사평 등을 역임. 선조 16년(1583년) 양지현감 . 1587년 금구현령 . 선조 29년(1596년) 함양군수 역임.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황석산성...
[함안조씨] 조준남(趙俊男)
(1547~1597) 자 : 사언(士彦) 효행(孝行)으로 추천되어 소격서(昭格署) 참봉(參奉)이 되었다. 정유재란 때 왜적과 싸우다 무진정(無盡亭) 위에서 자결. 숙종 32년(1706년) 부자(父子)정려(旌閭)를 명하여 부자(父子) 쌍절각(雙節閣)이라 하여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무진정 왼편에 세워졌다. 고종 5년(1868년)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에 증직되...
[함안조씨] 조신도(趙信道)
(1554~1595) 자 : 중유(仲由) 무과에 급제. 온양군수로 지내던 공은 임진왜란 때 의주(義州)로 피난 가던 선조대왕의 수레를 호위하여 적과 싸우면서 무사히 피난하게 하고, 다시 적과 싸우다가 순절(殉節) 하였다. 증병조판서(贈兵曹判書)하고 호성원종훈(扈聖原從勳) 일등훈(一等勳)과 선무원종삼등훈(宣武原從三等勳) 하였다.
[함안조씨] 조민도(趙敏道)
(1556~1592) 자 : 계유(季由)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공은 벼슬을 가지지 않았으며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의 진중에 나아가 전투에 참가 싸우다가 순절하였다.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특증하고 녹훈(錄勳)과 함께 정려(旌閭)하고 조세감면의 은전을 주었다.
[함안조씨] 조응도(趙凝道)
(1565~1597) 자 : 사성(士成) 호 : 송오(松塢) 선조 17년(1584년) 무과에 급제. 선조 25년(1592년) 고성현령으로 있을 때 임진왜란을 맞아 끝까지 성을 사수. 정유재란때 중과부적으로 자결. 그후 통정대부(通政大夫)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증직 되었다.
[함안조씨] 조형도(趙亨道)
(1567~1637) 자 : 대이(大而) 호 : 동계(東溪)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화왕산성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선조 27년(1594년) 무과에 합격 선전관 겸 비국랑(宣傳官 兼 備局郞)에 임명, 통정대부, 경산현령. 광해군 14년(1622년) 가선대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南漢山城)의 치욕(恥辱)을 듣고 울분이 폭발 등창이 터져 분사(憤死)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