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 27860건, 693/1858 페이지
[용궁이씨] 이진명(李振明)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용궁이씨] 이의량(李毅良)
조선조에 중군(中軍)을 지냈다.
[용궁이씨] 이형식(李炯植)
조선(朝鮮) 때 만호(萬戶)를 역임했다.
[용궁이씨] 이찬(李 燦)
? - 1654(효종 5). 자(字)는 증명(仲明), 행 (行)의 후손. 독학으로 의술을 연구, 의학자로서 이름을 떨쳐 1632년(인조 10) 어의(御醫)의 치료에도 효험을 얻지 못한 인조의 병을 고쳤다. 그후 사어(司御) · 종부시주부(宗薄寺主簿) · 공조좌랑(工曹佐郞) · 군위현감(軍威縣監)을 역임하고 병으로 사퇴했...
[옥구이씨] 이변룡(李幾龍)
자(字)는 견서(見瑞). 아버지의 상을 당해 아우 희룡(希龍)과 함께 묘소에 여막을 짓고 3년 시묘하였다. 이에 감동한 마을사람들이 그의 거실을 우애당(友愛堂), 시묘한 골짜기를 효막동(孝幕運)이라 하였고, 효행으로 천거되어 습독(習讀)에 제수(除授)되었다.
[옥구이씨] 이희룡(李希龍)
자(字)는 응서(鷹瑞). 1576년(선조 9)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금제하여 사헌부(司憲府) 감찰 (監察)이 되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 때 경주(慶州)와 울주(蔚州) 사이의 적세를 엿보고자 내려가다 충주(忠州)의 달천(獺川)에서 적을 만나 분전하다 순절(殉節)했다. 1689년(숙종 15) 호조 참의(戶曹參議)에 증직(贈職)되고 삼강려(二綱間)의 특전)이...
[옥구이씨] 이문익(李文翼)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곽재우(郭再佑) 와 함께 화왕산성(火旺山城) 전투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옥구이씨] 이문성(李文里)
조선조(朝鮮朝)에 훈도(訓導)를 지냈다
[옥구이씨] 이문진(李文珍)
아버지 희룡(希龍)이 순절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싸움터로 가다가 신령 (新寧)에서 적을 만나 역전하다 전사하였다. 1689년(숙종 15) 아버지 희룡, 그의 부인 월성김씨(月城金氏)와 함께 삼강려(三綱間)의 특전이 내려졌고,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에 증직(贈職), 삼강사(三綱祠)에 제향되었다.
[옥구이씨] 이문참(李文參)
조선(朝鮮) 때 군자감 봉사(軍資監奉事)를 지냈다.
[옥구이씨] 이지온(李之編)
조선조에 예빈시(禮濱寺) 첨정(余正)을 역임하였다.
[온양이씨] 이태귀(李泰貴)
호(號)는 삼성당(三省堂). 조선(朝鮮) 숙종(肅宗) 때 사람으로 효성이 지극하여 모친(母親)의 병이 위독(危篤)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4번이나 살아나게 하였고, 3년 동안 초막올 짓고 모친의 무덤을 살피니 나라에서 그의 효행(孝行)을 표창하고 정려(施 間)를 하사했다.
[온양이씨] 이흥엽(李興燁)
호(號)는 에일당(愛日堂). 조선 현종(憲 宗) 때 효자(孝子)로 칭송이 자자하여 정려와 삼효문(三孝門)이 세워졌고, 의친왕(義親王)의 친필로 「온양이씨삼효문(il[陽李氏二孝門)」이라 쓴 비석(碑石)이 세워졌다.
[온양이씨] 이원배(李元培)
자(字)는 찬옥(贊玉), 호(號)는 영모당(永慕堂). 효행이 지극하여 조선(朝鮮) 순종(純宗)으로부터 온양이씨(溫陽李氏) 계효지비(繼孝之碑)가 건립되었다.
[온양이씨] 이응선(李應普)
호(號)는 검헌(儉軒). 조선 순종(純宗) 때 시종관(侍從官)을 지냈으며 순종(純宗) 별세(別世) 후 항일 운동(抗日運動)에 일생을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