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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정씨] 정서(鄭 叙)
호는 과정(瓜亭),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항(沆)의 아들. 음보(蔭補)로 내시 낭중(內侍郎中)에 이르렀고, 공예대후(恭睿大后 : 인종비) 여동생의 남편으로서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문장(文章)에 뛰어났다.
1151년(의종 5) 폐신(嬖臣) 정 함(鄭 諴)․김존중(金存中)의 참소로 고향 동래(東萊)에 장류(杖流)될 때 의종으로부터 곧 소명(召命)을 내리겠...
[동래정씨] 정호(鄭 瑚)
고려(高麗) 때 봉산군(蓬山君)에 봉해졌다.
[동래정씨] 정양생(鄭良生)
호(號)는 우곡(愚谷), 시호(諡號)는 양도(良度). 고려조(高麗朝)에 감찰대부(監察大夫)를 지내고, 봉원부원군(蓬原府院君)에 봉해졌다.
[동래정씨] 정구(鄭 矩)
1350(충정왕 2)~1418(태종 18) 자(字)는 중상(仲常), 호(號)는 운학재(雲壑齋), 시호(諡號)는 정절(靖節), 감찰대부(監察大夫) 양생(良生)의 아들. 1377(우왕 3) 문과(文科)에 급제, 전교부령(典校副令)을 지내고, 조선개국 후에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이 되었다.
1394년(태조 3) 왕명으로 한이(韓 理)․조서(曺 庶)․권홍(權 ...
[동래정씨] 정곤(鄭 坤)
호(號)는 복재(復齋). 이 색(李 穡)의 문인. 문과에 급제한 후 조선 때 대사성(大司成)․지제교(知製敎) 등을 역임하였다.
[동래정씨] 정흠지(鄭欽之)
1378(우왕 4)~1439(세종 21) 자(字)는 요좌(堯佐), 시호(諡號)는 문경(文景), 감찰대부(監察大夫) 양생(良生)의 손자, 부(符)의 아들,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후 음보(蔭補)로 지평(持平)이 되고, 1408년(태종 8) 박은(朴 訔)을 민무질(閔無疾)의 일파라 하여 탄핵하다 장흥(長興)에 유배되었다.
그 후 풀려 나와 1411년 식년문...
[동래정씨] 정복주(鄭復周)
자(字)는 사고(師古), 호(號)는 죽당(竹堂), 판사 원의(元義)의 아들. 1406년(태종 6)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역임하였다.
[동래정씨] 정사(鄭 賜)
1400(정조 2)~1453(단종 1) 현감(縣監) 귀령(龜齡)의 아들. 1420년(세종 2)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검열(檢閱)․감찰(監察)․정언(正言)을 거쳐 검상(檢詳)․사인(舍人)․집의(執義) 등을 역임했다. 1448년(세종 30) 예문관 직제학(藝文館直提學)이 되고 뒤에 진주 목사(晋州牧師)를 지냈다.
[동래정씨] 정창손(鄭昌孫)
1402(태종 2)~1487(성종 18) 자(字)는 효중(孝中), 중추원사(中樞院使) 흠지(欽之)의 아들. 1423년(세종 5)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426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가 되고, 이어 집현전 저작랑(集賢殿著作郞)․교리(校理)를 역임, 1441년 사섬서령(司贍署令)으로 전임하였다.
1444년(세종 26...
[동래정씨] 정수홍(鄭守弘)
자(字)는 의백(毅伯), 호(號)는 풍천(楓川), 예의 판서(禮儀判書) 가종(可宗)의 아들. 공민왕(恭愍王) 때 문과(文科)에 급제, 군읍(郡邑)의 수령(守領)을 역임, 조선조에 들어와 태종 때 집의(執義)․대사간(大司諫), 세종 때 대사헌(大司憲)․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이르렀다.
덕행(德行)․문장(文章)으로 이름 높았고, 권 근(權 近)․하윤(河崙)․...
[동래정씨] 정이한(鄭而漢)
?~1453(단종 1) 주(賙)의 아들. 1432년(세종 14)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사관 (史官)을 지낸 뒤 1441년 사복시 소윤(司僕寺少尹)으로 도체찰사(都 體察使) 황보인(皇甫仁)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평안도(平安道)․함 길도(咸吉道)의 변방 경계상태와 축성공사(築城工事)를 감독했다.
1443년 한성부 소윤(漢城府少尹)으로서 경상도에 파...
[인천채씨] 채영(蔡 泳)
조선 때 군자소감(軍資少監)을 지냈다.
[횡성조씨] 조대진(趙大秦)
조선(朝鮮) 때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
[칠원제씨] 제익주(諸翊周)
1619년~?. 자(字)는 숙헌(淑獻). 선교렁(宣敎郞)으로 유곡(幽谷) 찰방(察訪)을 역임하였다.
[횡성조씨] 조숙창(趙叔昌)
?~1234(고종 21). 평장사(平章事) 충(沖)의 아들. 1231년(고종 18) 몽고의 살리타이 (撒禮塔)의 침입에 방수장군(防戍將軍)으로 함신진(咸新鎭)을 지키다가 항복, 적을 도와 삭주(朔州) 선덕진(宣德鎭)도 항복하게 했다. 대장군(大將軍)을 거쳐 상장군(上將軍)에 올랐으나 1234년 반란한 필현보(畢賢甫)의 진술에 의해 연루자로 효수(梟首)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