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 27860건, 689/1858 페이지
[진양진주정씨] 정갑린(鄭甲麟)
자(字)는 치문(致文). 조선(朝鮮) 때 비서승(秘書丞)을역임하였다.
[진양진주정씨] 정희면(鄭熙冕)
자(字)는 태현(泰賢), 호(號)는 국사(菊史). 성리학에 전념하다가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김용구(金容球)와 함께 국권회복(國權回復)을 결심하고 의병(義兵)을 모아, 1907년 영광(靈光)에서 왜적과 싸워 패하여 체포되어 광주 형무소(光州刑務所)에서 옥고(獄苦)를 겪다가 융희(隆熙 : 순조) 황제(皇帝) 대관의 은전(恩典)으로 석방되었다...
[횡성조씨] 조응세(趙應世)
조선(朝鮮) 때 부정(副正)을 역임하였다.
[영천최씨] 최승주(崔承澍)
고려시대, 전호위 상호군(典護衛上護軍)
[횡성조씨] 조지백(趙支伯)
고려(高麗) 때 합문지후(閤門祗侯)에 이르렀다.
[칠원제씨] 제정구(諸廷坵)
1944년~1999년. 자(字)는 대로(大路)이고 호(號)는 운천(雲天)이며 충효절의(忠孝節義) 가문(家門)의 후손(後孫) 병근(炳根)의 아들이다. 1944년 고성(固城)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재학 중 교련(敎鍊) 반대(反對), 민청학련(民靑學聯) 사건(事件)으로 옥고(獄苦)를 치렀다. 1977년부터 서울 양평동 철거민들과 함께 경기도 시흥시 신평동에 복음자...
[광산탁씨] 탁온(卓 溫)
호(號)는 졸암(拙庵). 고려 때 도승지(都承旨)를 지냈다.
[동래정씨] 정기원(鄭期遠)
1559(명종 14)~1597(선조 30) 자(字)는 사중(士重), 호(號)는 현산(見山), 시호(諡號)는 충의(忠 毅), 별좌(別坐) 상신(象信)의 아들. 1585년(선조 18) 식년문과(式年文 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호조(戶曹)․형조(刑曹)․공조 좌랑(工曹佐 郞) 등을 지내고, 1592년 임진왜란 중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 官)으로 명나라에...
[동래정씨] 정협(鄭 協)
1561(명종 16)~1611(광해군 3) 자(字)는 화백(和伯), 호(號)는 한천(寒泉), 우의정(右議政) 언신(彦 信)의 아들. 1585년(선조 18)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1588년 식년문 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검열(檢閱)․정자(正字)를 지냈다. 1589년 아버지가 기축옥사(己丑獄事)에 연루, 남해(南海)의 유배지(流 配地)에서 죽...
[동래정씨] 정보성(鄭輔聖)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크게 공을 세웠고, 벼슬이 부호군(副護軍)에 이르렀다.
[동래정씨] 정호인(鄭好仁)
호(號)는 소산(蘇山). 참봉 (參奉)을 지낼 때 임진왜란 (壬辰倭亂)이 일어나자 문종(文宗)의 위패(位牌)를 교동(校洞)으로 안 치(安置)하였으며,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포로로 일본에 끌려가 9년 만에 돌아왔다. 그후 좌랑(佐郞)에 증직되었고, 양산(梁山)의 소로원 (小魯院)에 제향(祭享)되었다.
[동래정씨] 정호의(鄭好義)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兄) 호인(好 仁)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각처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양산의 소 로원(小魯院)에 제향(祭享)되었다.
[동래정씨] 정목(鄭 穆)
시호(諡號)는 문안(文安), 문도(文道)의 아들. 고려에서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역임하였다.
[동래정씨] 정택(鄭 澤)
고려(高麗) 때 찬성사(贊成事)를 지냈다.
[동래정씨] 정항(鄭 沆)
1080(문종 34)~1136(인종 14) 자(字)는 자림(子臨), 시호(諡號)는 문안(文安), 좌복야(左僕射) 목(穆)의 아들, 숙종(肅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 상주사록(尙州司錄)․ 직한림(直翰林)을 거쳐 예종(睿宗) 때 내시(內侍)로서 주사(奏事)를 맡아보았다. 우정언(右正言)으로 있을 때 직언을 자주하여 중신(重臣)들의 시기를 받아 전주 통판(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