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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고성남씨] 남만회(南萬會)
자(字)는 명원(明遠). 학문(學問)을 독구(篤究)하였고 부모(父母)에게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니가 전염병(傳染病)으로 죽으니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서 피했으나 혼자서 염습부관(殮襲祔棺)의 절차(節次)를 예(禮)에 따라 마치고 몸이 쇠약(衰弱)해질 지경에 이르도록 주야(晝夜) 호곡(號哭)하였으나, 병(病)이 전염(傳染)되지 않으니 마을 사람들이 다 효성(孝誠...
[영양고성남씨] 남주헌(南周獻)
1769 (영조 45) ~ 1821 (순조 21) 자는 문보(文甫), 호는 의재(宜齋), 돈령부 도정(敦寧府都正) 인구(麟耈)의 아들. 1798년(정조 22)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세마(洗馬), 호조 좌랑(戶曹佐郞)․감찰(監察)을 거쳐 함양(咸陽)․무주(戊朱)․남원(南原)․임천(林川) 등 여러 고을을 다스리고, 1814년(순조 14) 정시문과(廷試文科)...
[영양고성남씨] 남자현(南慈賢)
1872 (고종 9) ~ 1933 통정대부(通政大夫) 정한(廷漢)의 딸. 경북 영양(英陽) 출신. 1895년 남편 김영주(金永周)가 의병으로 왜병과 싸우다 죽어서 혼자 유복자(遺腹子)를 길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주에 망명,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서 활약하는 한편 북만주 12개처에 교회를 건립하고 10개의 여성 교육회를 조직, 독립운동과 여성 계몽에...
[영양고성남씨] 남이무(南履懋)
자(字)는 덕옹(德翁). 조선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삼사(三司)와 승지(承旨)를 거쳐 이조 참의(吏曹參議)와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영양고성남씨] 남이형(南履炯)
자(字)는 광보(光甫). 조선 (朝鮮) 때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여삼사(三司)와 승지(承旨)를 역임하고, 호조참판(戶曹參判)을 거쳐 강화 유수(江華留守)를 지냈다. 청백(淸白)하기로 유명했다.
[영양고성남씨] 남이관(南履灌)
1780 (정조 4) ~ 1839 (현종 5) 교명은 세바스티아노,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죽은 필용(必容)의 아들. 1837년(헌종 3) 정하상(丁夏祥)의 집에서 서양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천주교에 입교, 전도에 힘쓰다가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 때 체포되어 사형되었다.
[영양고성남씨] 남상교(南尙敎)
1783 (정조 7) ~ 1866 (고종 3) 자는 문숙(文叔), 호는 우촌(雨村),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벼슬은 목사(牧使)․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를 역임했으며, 문명(問名)이 높았다.
천주교를 신봉하다가 1866년(고종 3)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피체, 아들 종삼(鍾三)과 함께 사형되었다.
[영양고성남씨] 남헌교(南獻敎)
자(字)는 경회(景會), 호(號)는 가릉(嘉陵), 시호(諡號)는 숙헌(肅憲). 조선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이조 참판(吏曹參判)․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를 거쳐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역임하였다.
[영양고성남씨] 남계우(南啓宇)
1811 (순조 11) ~ 1888 (고종 25) 초명은 영시(英詩) 자는 일소(逸少), 호는 일호(一濠), 구만(九萬)의 5대손, 부사 (府使) 진화(進和)의 아들. 벼슬은 도정(都正)을 지냈고, 그림을 잘 그렸으며 특히 나비 그림에 뛰어나 속칭 남나비라 불리었다. 나비 그림과 조화를 이룬 각종 화초에능하여 섬세하고 치밀한 화풍을 나타내었다.
[영양고성남씨] 남정순(南廷順)
자(字)는 성휴(聖休), 시호(諡號)는 효정(孝貞). 조선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옥당(玉堂)․직제학(直提學),경기(京畿)․강원(江原)․함경도(咸鏡道) 관찰사(觀察使)를 거쳐 제학(提學)과 이조판서(吏曹判書)․광주 유수(廣州留守)를 역임하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영양고성남씨] 남일우(南一祐)
자(字)는 백경(伯敬), 호(號)는 우당(愚堂). 조선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한림(翰林)과 대사성(大司成)을 거쳐공조 판서(工曹判書)를 역임하였다.
[영양고성남씨] 남두병(南斗柄)
자(字)는 자수(子壽).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공조 참판(工曹參判)을 거쳐 어영대장(御營大將)에 이르렀고, 7도의 감사(監司)를 역임하였다.
[영양고성남씨] 남헌(南 巘)
자는 세진(世鎭). 조선(朝鮮) 때 병사(兵使)를 지냈다.
[영양고성남씨] 남옥(南 沃)
자는 계여(啓汝). 조선조에서 영장(營將)에 이르렀다.
[영양고성남씨] 남익화(南益華)
자(字)는 평숙(平叔). 조선조(朝鮮朝)에서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여러관직(官職)을 거쳐 수군병마사(水軍兵馬使)를 역임하고, 부총관(副總管)에 이르렀으 며, 의안군(宜安君)에 봉(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