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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남씨] 남구만(南九萬)
(1629~1711)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이다. 효종 2년(서기 1651년) )진사시(進士試)에 사마시(司馬試)에 입격하고 효종 7년(서기 1656년) 문과에 등과하여 대사간 승지를 거쳐 전라감사 대사성 형조판서 도승지 대제학 우상 좌상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숙종 22년(서기 1696년)에 영중추부사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었다. 시호(諡號...
[의령남씨] 남용익(南龍翼)
(1628~1692) 자는 운경(雲卿)이고 호는 호곡(壺谷)이다. 19세에 진사시에 입격하고 21세에 문과에 등과하여 효종 7년(서기 1656년) 중시(重試)에 장원(壯元)하고 좌찬성과 양관의 대제학과 이조판서를 역임했다. 시호(諡號)는 00이다.
[의령남씨] 남익훈(南益薰)
(1640~1693) 자는 훈중(薰仲)이고 호는 파은(坡隱)이다. 현종 13년(서기 1672년) 문과에 등과하여 이조참판 경상 함경감사를 역임하고 좌성에 증직(贈職)되었다.
[의령남씨] 남연년(南延年)
(11653~1728) 자는 수백(壽伯)이요 호는 현암(玄岩)이다. 숙종(肅宗) 2년(서기 1676년)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훈령원 판관을 거쳐 도총부(都摠府) 경력(經歷), 청주(淸州) 영장(營將) 겸 토포사(討捕使)되어 이인좌(李麟佐)의 난(亂)을 토벌(討伐)하여 병조판서로 특증(特贈)되고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의령남씨] 남유상(南有常)
(1696~1728) 자는 길재(吉哉)이고 호는 태화(泰華)이다. 진사시(進士試)에 장원(壯元)하고 효장세자(孝章世子)의 사부(師傅)가 되어 숙종실록(肅宗實錄) 편찬(編纂)에 참여(參與)하여 부사정(副司正)을 역임하였다.
[의령남씨] 남유용(南有容)
(1698~1773) 자는 덕재(悳哉)이고 호는 뇌연(雷淵)이다. 영조 16년(서기 1740년) 문과에 등과(登科)하고 형조(刑曹)참의(參議) 대사성(大司成) 형조판서(刑曹判書) 봉조하(奉朝賀) 양관(兩館) 대제학(大提學)을 역임(歷任)하고 영의정이 증직되었다. 시호(諡號)는 문청(文淸)이다.
[의령남씨] 남공철(南公轍)
(1760~1840) 자는 원평(元平)이요 호는 금릉(金陵)이다. 정조 16년(서기 1792년) ) 문과에 등과하여 대사헌(大司憲) 양관(兩館) 대제학(大提學) 이조(吏曹) 및 예조판서(禮曹判書)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기로소(耆老所)에 봉조하(奉朝賀) 시호는 문헌(文獻)이고 익종(翼宗) 묘정(廟廷)에 배향되었다.
[의령남씨] 남정철(南廷哲)
(1840~1916) 자는 치상(穉祥)이요 호는 하산(霞山)이다. 고종 19년(서기 1882년)증광(增廣)문과(文科)에 장원(壯元)하고 예조, 공조참의를 거쳐 도승지, 예조판서, 내부대신을 역임하였다. 1907년에 장례원경(掌禮院卿) 궁내부(宮內府) 특진관(特進官) 1909년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었다. 애국가(愛國歌)를 지었고 덕수궁(德壽宮) 정문(正門)...
[의령남씨] 남병철(南秉哲)
(1817~1863) 자는 자명(子明)이요 호는 규제(圭齊))이다. 헌종 3년(서기 1837년) 식년 문과에 등과(登科)하여 병조정랑 공조 및 예조참의 도승지 전라감사 이조판서 양관 대제학 도총관(都摠管)을 역임한 천문학자(天文學者)이다. 시호(諡號)는 문정(文貞)이다.
[의령남씨] 남상길(南相吉)
병길(秉吉)(1820~1869) 자는 자상(子裳)이요 헌종 14년(서기 1848년) 증광별시에 등과(登科)하여 성균관 대사성 지중추부사 지춘추관사 도총관 예조 및 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의령남씨] 남일우(南一祐)
(1837~1886) 자는 백경(伯敬)이요 청종10년(서기 1859년) 문과에 등과하여 한림(翰林)과 대사성(大司成)을 거쳐 공조판서(工曹判書)를 역임했다.
[의령남씨] 남형우(南亨祐)
(1873~1943) 자는 성칠(聖七)이요 호는 수석(瘦石)이다. 00전문교 법률교수로 1909년 대동청년단을 조직하고 창원군 의거의 원동력이 되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무총장에 역임하였다. 198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 건국포장을 수훈했다.
[의령남씨] 남상목(南相穆)
(1876~1908) 자는 문일(文一) 1905년 의용사를 모집하여 의병장(義兵將)이되어 판교(板橋)의 일본(日本) 헌병대(憲兵隊)와 교전(交戰)하고 음성(陰城)에서 일병(日兵)과 격전(激戰)을 하였으나 패하여 숨어 있다가 체포(逮捕)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殉國)하였다. 1961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獨立) 유공자(有功者)로 건국포장(建國褒章)을...
[의령남씨] 남상덕(南相悳)
(1881~1907) 자는 인옥(仁玉) 한말(韓末) 조일신협약(朝日新協約)에 따라 군대(軍隊)가 해산명령(解散命令)이 내리자 분개(憤慨)하여 일군과 전투를 하다 장렬(壯烈)히 전사(戰死)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1962년 건국훈장(建國勳章) 복장(複章)을 수훈(受勳)했다.
[의령남씨] 남송학(南松鶴)
(1904~1962) 일명(一名) 우현(禹鉉) 제0대 민의원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