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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남씨] 남익지(南益胝)
승봉랑(承奉郞) 풍저창(豊儲倉) 부사(副使) 1991년 7월 의령남씨대종중에서 초혼장(招魂葬)으로 시중공(侍中公) 묘(墓) 1록(麓)에 성분(成墳)하여 제단(祭壇)이 마련하였다.
[의령남씨] 남효윤(南孝允)
고려(高麗) 말엽(末葉) 조의대부(朝議大夫) 신호위(神虎衛) 대장군(大將軍)으로서 봉익대부(奉翊大夫) 판도판서(版圖判書) 선력좌리공신(宣力佐理功臣)에 추증(追贈)되어 의산군(宜山君)에 피봉(皮封)되었다.
[의령남씨] 남천로(南天老)
지영광군사(知靈光郡事)를 역임하고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증직(贈職)되었다.
[의령남씨] 남을번(南乙蕃)
(1320~1395) 고려조에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역임하고 조선조 개국 후 익대보조공신(翊戴補祚功臣)으로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문하시중(門下侍中)에 특진되고 의령부원군에 봉해지고 시호는 경령(敬烈)아다.
[의령남씨] 남을진(南乙珍)
(1331)~1393) 호(號)는 곡음(谷陰) 고려 공민왕 17년(서기 1368년) 현령과(賢良科)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문하성 참지문하부사(參知門下府事)에 이르렀고 조선조에 입조하지 않는 고려의 전절신(全節臣)이다.
[의령남씨] 남재(南 在)
(1351~1419) 초휘(初諱)는 겸(謙)이고 자(字)는 구정(龜亭)이다. 고려 공민왕 19년 1370년 진사시에 입격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밀직사(密直司) 좌대언(左代言)에 이르렀다. 조선조(朝鮮朝) 개국(開國) 1등 공신으로 태종 11년에 영의정(領議政)이 되어다. 시호(諡號)는 충경(忠景)이며 태조(太祖)묘정(廟廷)에 배향(配享)되었다.
[의령남씨] 남합(南 闔)
(1354~1398) 공민왕 23년 (서기 1374년) 성균관시(成均館試)에 등과(登科)하여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가 되었다. 조선이 개국되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임명되고 판상서겸의흥삼군부도총제(判尙書謙義興三軍府都摠制)에 이르렀다. 태조묘정에 배향(配享)되었다.
[의령남씨] 남좌시(南佐時)
(1336~1387) 공민왕 조 경동당겸전시(京東堂謙前試)에 등과(登科)하여 강릉(江陵)에서 왜구(倭寇)를 격퇴(擊退)하였다. 정당문학(政堂文學)과 진현관(진현관(進賢館)대제학(大提學)을 역임하고 보(補)리(理)공신(功臣)으로 의성군에 봉해졌고 시호(諡號)는 양정(良靖)이다.
[의령남씨] 남경우(南景祐)
(1393~1467) 대호군(大護軍)과 중추원(中樞院) 부사(副使)를 역임하고 1460년 의령군(宜寧君)에 피봉(皮封)되었고, 병조판서(兵曹判書),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시호(諡號)는 안호(安胡)아다.
[의령남씨] 남지(南 智)
(1392~1454) 17세에 음보(蔭補)로 감찰(監察)이 되고 여러 관직을 거쳐 세종 31년에 우의정(右議政), 1451년에 좌의정(左議政)이 되었다. 황보인 김종서 등과 함께 단종을 보필해달라는 고명(顧命)을 받았으나 풍음(風음)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중추원(中樞院) 영사(領事)로 재직하였다 시호는 충(忠)간(簡)이다.
[의령남씨] 남간(南 簡)
(1400~?) 세종(世宗) 원년(元年) 서기 1419년) 생원시(生員試)에 입격(入格)하고 새종 9년(서기 1427년) 문과에 등과하여 지평 장령을 거쳐 직제학(直提學)에 이르고 지사간원사(知司諫院)애 재직 시 신병으로 사직하였다.
[의령남씨] 남휘(南 暉)
대종(大宗)의 4여 정선공주(貞善公主)와 혼인(婚姻)하여 의산위(宜山尉)가 되었다. 1418년 18년(서기 1418년) 동지총제(同知摠制)가 되고 이듬해 판한성부사가 되고 세종 18년(서기 1436년)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가 되었다. 시호(諡號)는 소간(昭簡)이다.
[의령남씨] 남곤(南 袞)
(1471~1527) 성종 25년(서기 1494년 문과에 등과(登科)하여 부제학 좌부승지가 되었다. 뒤에 우참찬을 거쳐 대제학을 겸임하였다. 중종18년(서기 1523년)에 영의정에 올랐다. 심정 등과 기묘사화(己卯士禍)를 꾸민 것으로 세인의 욕을 먹었다. 문경(文景)이란 시호를 받았으나 선조(宣祖) 원년(元年)(서기 1568년)에 삭탈관직(削奪官職) 되었다...
[의령남씨] 남이(南 怡)
(1441~1468) 태종의 부마 의산의의 장손(長孫)으로 17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이시애 난을 평정하고 공조판서가 되었다. 이듬해 1468년 병조판서가 되었다. 유자광의 무고로 주살(誅殺)되었다. 순조 18년(서기 1818년) 복관복작(復官復爵)되고 충무(忠武)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의령남씨] 남효온(南孝溫)
(1454~1492) 자(字)는 백공(伯恭)이고 호(號)는 추강(秋江)이다. 성종조에 18세 소년으로 소능(昭陵:단종 어머니 능)을 복능(復陵)하라고 상소하다 성종이 듣지 않자 세상을 등지고 각처를 돌아다녔다. 뒤에 모명(母命)으로 응시하여 진사에 입격하였다. 창렬사(昌烈祀:생육신 사당)에 배향되었다. 시호(諡號)는 문정(文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