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 27860건, 255/1858 페이지
[광주안씨] 안황(安 滉)
(1523~1585) 자(字);경호(景浩). 군시호(君諡號):광양군(廣陽君),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 후 사도시정(司導寺正)이 되었고,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는 돈녕부 도정(敦寧府 都正)에 올라 임금을 호종(扈從)하였다. 호성공신2등(扈聖功臣二等)에 록훈(錄勳)되었다.
[광주안씨] 안응원(安應元)
(1565~1604) 자(字);선백(善伯), 군시호(君諡號):광원군(廣原君), 1606년(선조34년)에 안악군수(安岳郡守)로 재임시, 식년시 갑과(式年試 甲科)에 급제하고 훈련원 정언(訓練院 正言)을 역임하였다. 임난후 호성원종공신3등(扈聖原從功臣三等)에 녹선(錄選)되었으며, 문재(文才)가 뛰어났으나 41세로 졸 하였다.
[광주안씨] 안응형(安應亨)
(1578~1655) 자(字);숙가(叔嘉), 호(號);정재(靜齋), 1611년(선조39년)에 식년시 병과(式年試 丙科)에 급제하고, 사간원 정언(司諫院 正言). 사헌부 지평, 장령(司憲府 持平, 掌令)과 홍문관 교리, 수찬(弘文館 校理, 修撰)을 역임하였고 남양(南陽)과 제주군수(濟州郡守)로 재임시, 선정으로 공덕비(功德碑)가 새워졌으며, 안동부사(安東府使...
[광주안씨] 안헌징(安獻徵)
(1600~ ? ) 1621년(광해군13년)에 증광시 을과(增廣試 乙科)에 급제하고, 1626년(인조4년)에 중시(重試)하여, 검열․이조좌랑(檢閱․吏曹佐郞)을 지냈고, 다시 예조정랑․장령․부승지(禮曹正郞․掌令․副承旨) 등을 거쳐 벼슬이 관찰사(觀察使)에 이르렀다. 문장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광주안씨] 안시현(安時賢)
(1601~1649) 자(字);군망(君望), 1626년(인조4년)에 정시 을과(庭試 乙科)에 급제하여 필선(弼善)에 이르렀으며 병자호란후 호종원종공신(扈從原從功臣)에 록훈(錄勳)되었으며, 당시 문장가 였던 오준(吳俊) 황상(黃床)등과 함께 팔학사(八學士)라 칭할 만큼 문재(文才)가 뛰어 났으나 49세로 일찍 졸하였다.
[광주안씨] 안후열(安後說)
(1632~1724) 1652년(효종3년)에 증광시 을과(增廣試 乙科)에 급제, 호당(湖堂)에 들었고 사경기사관․지평․수찬․암행어사(司經記事官․持平․修撰․暗行御史)를 지냈다. 현종조에는 교리․수찬․장령․헌납․집의․승지․동부승지․좌승지․도승지(敎理․修撰․掌令․獻納․執義․承旨․同副承旨․左承旨․都承旨) 등을 역임했다.
[광주안씨] 안서우(安瑞羽)
(1664~1735) 호;양기재(兩棄齋). 일찍이 문명을 세상에 떨친 인물이다. 1691년(숙종17년)에 생원이 되고, 이어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앞서 성묘종사(聖廟從祀)의 의론에 참여했으므로 승문원(承文院)에 뽑히지 못하고 태인군수․울산부사(泰仁郡守․蔚山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후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임명되었으나, ...
[광주안씨] 안정복(安鼎福)
(1712~1791) 호(號);순암(順菴). 시호(諡號):문숙(文肅), 군시호(君諡號):광성군(廣城君) 광주안문(廣州安門)이 배출한 영․정조(英․正祖) 시대의 실학자(實學者)이다. 그는 이익(李瀷)의 문인으로서 봉사․직장․별제․감찰(奉事․直長․別提․監察)등을 지낸 후 세자익찬(世子翊贊)․세손사부(世孫師傅)로 있으면서 세손을 가르쳤다. 이어 회인현감(懷仁縣監...
[광주안씨] 안응로(安應魯)
안응로(安應魯) 검열․헌납(檢閱․獻納)을 거쳐 이조정랑․지평(吏曹正郞․持平) 등을 지냈다.
[광주안씨] 안세징(安世徵)
(1639~1702) 1675년(숙종1년)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우승지․형조정랑․공조참의(右承旨․刑曹正郞․工曹參議)를 거쳐 보사원종공신1등(保社原從功臣 一等)에 록훈(錄勳)되었다
[광주안씨] 안상즙(安商楫)
안상즙(安商楫) (1696~1774) 용안․연산․창녕현감(龍安․連山․昌寧縣監)을 지내고, 삭녕․해주군수(朔寧․海州郡守)를 거처 부평도호부사(富平都護府使)를 역임하여 선치(善治)하였음으로, 영조가 속대주첩(續代柱帖)을 만들어 공의 십고십상(十考十上)을 등재하라 하고 대녹피(大鹿皮)를 하사(下賜)하였다. 사후(死後)에 서유대가 청백리(淸白吏)에 천거하였다 ...
[광주안씨] 안상즙(安商楫)
(1696~1774) 용안․연산․창녕현감(龍安․連山․昌寧縣監)을 지내고, 삭녕․해주군수(朔寧․海州郡守)를 거처 부평도호부사(富平都護府使)를 역임하여 선치(善治)하였음으로, 영조가 속대주첩(續代柱帖)을 만들어 공의 십고십상(十考十上)을 등재하라 하고 대녹피(大鹿皮)를 하사(下賜)하였다. 사후(死後)에 서유대가 청백리(淸白吏)에 천거하였다
[광주안씨] 안정최(安廷最)
안정최(安廷最) (1725~1794) 영조․정조 조에 절충장군(折衝將軍)을 거쳐 도총관(都摠管)을 역임했으며, 1794년(정조18년)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가 되었다.
[광주안씨] 안종화(安鍾和)
(1806~1924) 자(字);사응(士)應, 호(號);수재(漱齋)로 궁내부낭관․법부참서․세자시강원 시독․중추원 의관(宮內府郞官․法部參書․世子侍講院 侍讀․中樞院 議官)등을 역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민영환(閔泳煥) 등과 함께 조약의 폐기를 주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낙향하였다. 역사에도 관심이 깊어 광범한 문헌을 인용하여 국조인...
[광주안씨] 안종수(安宗洙)
(1849~1896) 자(字);경전(敬專), 호(號);기정(起亭), 1882(고종19년)에 진사가 되고, 1895년에 주부(主簿)가 되었으며, 1906년에 황해도 시찰관(黃海道 視察官)을 거쳐 나주군수(羅州郡守)가 되었다. 남달리 학문에 조예가 깊어 내무대신(內務大臣) 박정양과 함께 국외(國外)를 두루 다녀와서 농정신편“(農政新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