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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안씨] 안엄경(安淹慶)
(1392~ ? )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충주목사, 호조참판(忠州牧使, 戶曹參判)을 역임하였다. 태종 17년 감찰어사(監察御使)로 재임시 전과(全過)․원욱(元郁)․류사식(柳士植) 등 19제현과 총마계(驄馬契)를 조직하여 동심사국에 힘썼다. 1453년(단종 1년) 계유정란(癸酉靖難)에 그의 사위 홍달손(洪達孫)이 협찬한 것을 알고 엄히 밀책(密責)하고, ...
[광주안씨] 안억수(安億壽)
(1427~ ? ) 1441년(세종32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예안현감(禮安縣監)을 지냈는데 숙부인 대사언 안완경(大司憲 安完慶)이 순절하자 현감직을 버리고 밀얀(密陽)으로 은거(隱居)하였다. 청염록(淸廉錄)에, 예안현감(禮安縣監)으로 재임시 그 지방에 거목장(椐木杖)이 명물이 이었는데, 모인(某人)이 거목장(椐木杖)을 선물함에 애용하다가 사임할 적에 &ld...
[광주안씨] 안구(安 覯)
(1458~1522) 호(號);태만(苔巒).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의 문인으로 1494년(성종25년)에 별시 병과에 급제하여 사간(司諫)을 역임하였다. 일찍이 남원(南原)에 부임하여 선정을 배풀어 백성들이 비(碑)를 새우고 그를 칭송했다고 한다. 청백리(淸白吏)에 기록되어 있다.
[광주안씨] 안증(安 嶒)
(1494~1553) 호(號);완귀(玩龜), 1548년(명종3년)에 별시 병과로 급제하여 시강원(侍講院) 사설(司說)로 재직중 을사사화(乙巳士禍)를 예측하고 전원에 물러가 정자(亭子)를 짓고 학문에 전념했을 때 남명 조식(南冥 曺植)이 이곳 정자(亭子)에 찾아와 공의 위상(偉像)과 학덕(學德)을 찬양하여 불급운문 만장기“(不及雲門 萬丈奇)&rdq...
[광주안씨] 안여경(安餘慶)
(1538~1592) 호(號);옥천(玉川). 도의(道義)와 문장이 뛰어났다. 관산서원(冠山書院)에 배향되었다.
[광주안씨] 안신(安 迅)
(1569~1648) 호(號);오휴자(五休子). 한강 정구(寒岡 鄭逑)의 문인으로 역학(易學)과 예학(禮學)에 능통하였다. 임난군공(壬亂軍功)으로 군기시 부정(軍器寺 副正)벼슬이 내렸다. 가례부췌(家禮附贅 三冊)등 많은 저술(著述)을 남겼다
[광주안씨]안진(安 軫)
안진(安軫) (1560~1635) 자(字):경숙(敬叔) 평소에 학문에 치중하여 덕망이 높았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초유사 김성일(招諭使 金誠一)을 도와 종군하였으며 1594년(선조27년)에 무과에 급제, 훈련원 봉사ㆍ주부(訓練院 奉事․主簿)를 역임하고 부호군(副護軍)에 올랐다. 선무원종공신 3등(宣武原從功臣 三等)에 녹훈되었다.
[광주안씨] 안윤손(安潤孫)
(1450~1520) 1471년(성종7년)에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검토관(檢討官)으로 경연(經筵)에 참가했으며 부교리ㆍ지평ㆍ장령(副敎理․持平․掌令) 등을 지냈다‘ 연산군 6년에 전라우도수군절도사(全羅右道水軍節度使)를 역임했고 이후 대사간ㆍ형조참의(大司諫․刑曹參議) 등을 거치면서 청백리(淸白吏)로 이름을 남겼다. 중종조에 대사헌ㆍ한성부좌윤ㆍ형조...
[광주안씨] 안윤덕(安潤德)
(1457~1535) 자(字);선경(善卿), 시호(諡號):익헌(翼憲). 1483년(성종14년)에 식년시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1497년(연산3년)에 문과 중시한 이래 정언ㆍ지평ㆍ사간ㆍ직제학(正言․持平․司諫․直提學) 등을 역임하고, 후에 경상ㆍ경기 도관찰사(慶尙․京畿 道觀察使)를 지냈다.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어 김제(金堤)...
[광주안씨] 안여경(安汝敬)
(1523~1585) 군시호(君諡號):광계군(廣溪君), 여주목사(驪州牧使)와 광주진관 병마동첨절제사(廣州鎭管 兵馬同僉節制使)를 지냈다. 뒤에 자헌대부(資憲大夫) 의정부좌참찬 겸 지의금부사(議政府左參贊 兼 知義禁府事)를 지냈다. 순충적덕보조공신 광계군(純忠積德補祚功臣 廣溪君)에 추증되었다.
[광주안씨] 안용(安 容)
(1522~1586) 자(字);사묵(士黙), 호(號); 송파(松坡). 1558년(명종13년)에 식년시 병과로 급제하여 영남어사(嶺南御使)와 승정원 동부승지(承政院 同副承旨)․황해감사(黃海監司)․호조참판(戶曹參判)․안동부사(安東府使)를 두루 역임하고, 1585년(선조18년)에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를 다녀왔다.
[광주안씨] 안사언(安士彦)
자는 언경(彦卿)이고, 호는 빙호자(氷壺子)이다. 출신지는 한양(漢陽)이다.
조부 안윤손(安潤孫). 부 안자흠(安子欽).제 안사웅(安士雄). 안사준(安士俊)‧안사영(安士英),
1513년(중종 8) 식년시 생원 , 1522년(중종 17) 식년시 을과 3위로 문과 급제.
1524년(중종 19)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1525년(중종 20) 3월 이조좌랑...
[광주안씨] 안사웅(安士雄)
(1529-1592) 1546년(명종1년)에 증광시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ㆍ지평(正言․持平)을 거쳐 좌승지ㆍ병조참의(左承旨․兵曹參議)에 이르렀으나 청백리 안성(淸白吏 安省), 안윤손(安潤孫)의 정신을 이어받아 청렴하였음으로 선조가 특별히 낙산(駱山) 아래에 집을 내렸다 전한다. 그 집이 세칭 삼청동 안가(安家)이다.
[광주안씨] 안대진(安大進)
1586년(선조19년)에 증시 문과(文科)에 올랐으며, 같은 해에 알성시 병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한림학사(藝文館 翰林學士)가 되었는데 이산보(李山甫)의 문인으로 문장에 뛰어나 이산보 이정립(李山甫 李廷立)과 함께 삼대문장(三大文章)으로 일컬어졌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해운도감(海運都監)의 현직(顯職)에 있으면서 큰공을 새웠고 왕의 서천(西遷)때에...
[광주안씨] 안민학(安敏學)
(1542~1601) 자(字);이습(而習), 호(號);풍애(風涯), 시호(諡號): 문정(文靖), 글씨가 뛰어났던 안담(安曇;1535~1585)의 아들로, 역시 문재로 이름을 남겼다. 제자백가(諸子百家)에 통달하였고 필법과 문장에도 뛰어나 사림들의 존경을 받았다. 광주회보“(廣州會報)”8에 보면, 안민학(安敏學)은 사암 박순(思菴 朴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