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고령박씨,고령박씨시조

작성일 : 2019-12-27 수정일 : 2021-10-21 작성자 : 관리자

유래

고령박씨의 약사
우리 고령박씨는 시조(始祖)에 이어지는 계대(系代)와 소목(昭穆)이 분명하지 못하여 상계(上系)에서 호장공 파(戶長公派)와 부창정공파(副倉正公派) 그리고 주부공파(主薄公派) 등 3파로 나뉘어 각기 고려에서 명문거족으로 면목을 세웠다. 특히 홍위위대장군(興威衛大將軍) 휘 지순(諱 之順)을 위시하여 고양부원군에 봉군(封君) 되신 휘(諱) 광순, 광우, 우생(光純, 光佑, 雨生)과 명장(名將)이신 판후덕부사(判厚德府事) 휘(諱) 임종(林宗) 그리고 찬성사 휘 이(贊成事 諱 理)가 대표적 인물 이다.

조선시대(朝鮮時代)에도 고령박씨는 타 박씨에 비해 그 손세가 현저히 적은 문중임에도 58명의 문과 급제자를 냈고 1명의 상신(相臣)과 많은 총재, 경재(家宰, 卿宰) 그리고 공신들을 배출하였는데 읍취헌 휘, 은(挹琴軒 諱, 開), 이조판서 문효공 휘 장원(吏曹判書 文孝公 諱長遠) 영성군 충헌공 휘 문수(盡城君 忠憲公 諱 文秀) 좌의정 문익공 휘 영원(左議政 文翼公 諱 永元) 영선군 문정공 휘 영보(靈善君 文靖公 諱 永輔) 등과 제3공화국 대통령 (大統領)으로서 민족중흥과 조국 근대화를 이룩한 휘정희(諱正熙)는 호장공파에서 대표적으로 문중을 빛내신 분이라 할 것이다.
또한 부창정공파에서도 조선조 개국 초에 무숙공 휘 만(武肅公 諱 菱)을 위시하여 청백리(淸白吏)인 감사 휘 처륜(監司 諱 處輪)과 좌찬성 휘 영준(左贊成 諱永俊) 그리고 참의 휘 제순(參議 諱協順) 이조판서 휘 건(吏曹判書 諱 樓)과 병자호란 때의 충신 충숙공 휘 난영(忠肅公 諱 蘭英), 석학(碩學)으로 학암(鶴巖) 휘정번(諱廷璠)과 무민당 휘인(無問堂 諱細)등이 대표적으로 문중을 빛내신 분들이다.
그리고 끝으로 주부공파(主簿公派)에서는 태종조 때 공신 고창부원군 휘시(是)와 임진란 때 공신인 의병장(義兵將) 휘진남(震男) 등이 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고령박씨(高靈朴氏)는 남한(南韓)에 43,77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조

고령박씨의 연원



고령박씨는 신라 시조왕(始祖王)이신 박혁거세(朴赫居世)29세손인 경명왕(景明王)의 제2자 고양대군(高陽大君) 휘 언성(諱 彦成)을 시조로 모시고 있다.



본관(本貫)의 유래는 고양대군의 봉토(封土)가 지금의 고령(高靈)인데 연유한 것으로 전해지며 그 밖에는 전기(傳記)가 없어 언급을 할 수는 없다.


파조

교수공파(敎授公派)



영참판공파(嶺參判公派)



직강공파(直講公派)



승지공파(承旨公派)



경참판공파(京參判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읍취헌공파(挹翠軒公派)



사정공파(司正公派)



현감공파(縣監公派)



무숙공파(武肅公派)



감사공파(監司公派)



참의공파(參議公派)



판관공파(判官公派)



소윤공파(小尹公派)



우윤공파(右尹公派)


역대인물

역대인물-고령박씨조상인물



박인황(朴仁滉) 고려 때 호장(戶長)을 지냈다.



박지순(朴之順) 고려(高麗) 때 강서인(江西人)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검교흥위대장군(檢校興威大將軍)이 되었다.



박길소(朴吉邵) 고려 때 감사(監司)를 역임하였다.



박섬(朴 暹) 고려조(高麗朝)에 어사(御使)를 지냈다.



박환(朴 還) 고려에서 부창정(副倉正)을 지냈다.



박연(朴 連) 고려 때 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



박윤정(朴允晶) 고려(高麗) 때 통례문 사인(通禮門舍人)을 역임했다.



박동신(朴東臣) 고려조에 동북면 찰리사(東北面察里使)를 지냈다.



박세영(朴世英) 고려(高麗) 때 동정(同正)을 지냈다.



박이(朴 理) 1283(충렬왕 9) 과거에 급제한 후 대광보국찬성사(大匡輔國贊成事)가 되었다.



박인걸(朴仁傑) 고려(高麗) 때 감문위 상장군(監門衛上將軍)을 지냈다.



박인비(朴仁庇) 고려 때 감문위 상장군(監門衛上將軍)을 지냈다.



박수견(朴守堅) 고려조(高麗朝)에 찬성사(贊成事)를 역임하였다.



박지(朴 持) 고려에서 좌랑(佐郞)을 역임하였다.



박광순(朴光純) 인걸(仁傑)의 손자, 찬성사(贊成事) 수견(守堅)의 아들. 고려 때 삼중대광 문하찬성사(三重大匡門下贊成事)를 역임하였고 고양부원군(高陽府院君)에 봉하여졌다.



박광우(朴光佑) 고려(高麗) 때 문과에 급제한 후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순충양절국덕찬화공신(純忠亮節國德贊化功臣)으로 고양부원군(高陽府院君)에 봉해졌다.



박덕생(朴德生) 고려 때 상서(尙書)를 지냈다.



박임귀(朴林貴) 고려조(高麗朝)에 판사(判事)를 역임하였다.



박임종(朴林宗) 이성계(李成桂)가 고려의 장군으로 기도(技都)를 토벌할 때 함께 큰 공()을 세웠으며, 1381(우왕 7) 서경 도순문사(西京都巡問使)가 되었고 이어 상호군(上護軍)문하평리(門下評理)에 이르렀으며 수성익대보조공신(輸誠翊戴輔祚功臣)에 봉해졌다.



박만(朴 蔓) 시호(諡號)는 무숙(武肅). 태조조(太祖朝)에 예조 판서(禮曹判書)를 역임하였다.



박시(朴 是) 조선 태조(太祖) 때 고창부원군(高昌府院君)에 이르렀다.



박흥양(朴興陽) 문하시중(門下侍中) 광우(光佑)의 아들. 1386(우왕 12)에 감찰 지평(監察持平)을 거쳐 조선(朝鮮) 세종(世宗) 때 문하부사(門下府使)에 이르렀다.



박경(朴 景) 조선 세종(世宗) 때 사재감 소윤(司宰監少尹)을 지냈다.



박진언(朴眞言) 조선 세종 때 종묘 서승(宗廟署丞)을 지냈다.



박계손(朴季孫) 조선 세종 때 창신교위(彰信校尉)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박공순(朴恭順) 조선 세종(世宗) 때 판관(判官)을 지냈다.



박건순(朴建順) 조선 세종(世宗) 때 관찰사(觀察使)를 역임하였다.



박지(朴 持) 조선(朝鮮) 세종조(世宗朝)에 현감(縣監)을 지냈다.



박사란(朴思爛) 1438(세종 20) 문과에 급제한 후 감찰(監察)을 지냈다.



박임익(朴林益) 조선 세종(世宗) 때 호조 판서(戶曹判書)를 역임하였다.



박석생(朴碩生) 조선(朝鮮) 때 판관(判官)을 지냈다.



박수산(朴壽山) 조선(朝鮮) 세종(世宗) 때 어모장군(御侮將軍)에 이르렀다.



박윤빈(朴允斌) 조선 세종(世宗)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박제순(朴悌順) 1468(세조 14) 문과에 급제한 후 이조 참의(吏曹參議)를 역임했다.



박진(朴 稹) 조선(朝鮮) 세종조(世宗朝)에 현감(縣監)을 지냈다.



박문형(朴文亨) 조선 세종(世宗) 때 사정(司正)을 역임하였다.



박익엄(朴益儼) 조선 세종(世宗) 때 목사(牧使를 지냈다.



박익의(朴益儀) 조선 세종조(世宗朝)에 군수(郡守)를 지냈다.



박용화(朴用和) 조선 세종(世宗) 때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박계분(朴季芬) 조선 세종(世宗) 때 대호군(大護軍)을 역임했다.



박숙동(朴叔童) 조선 세종(世宗) 때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을 지냈다.



박담손(朴聃孫) 조선 세조(世祖) 때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박망달(朴望達) 조선 세조(世祖) 때 현령(縣令)을 지냈다.



박세광(朴世光) 조선 세조(世祖) 때 이조 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