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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권씨] 권율(權 慄)

작성일 : 2017-06-13 10:47

1537 (중종 32) 1599 (선조 32)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취당(晩翠堂)․모악(暮嶽), 시호(諡號)는 충장(忠莊), 영의정 철()의 아들. 1582(선조 15) 식년 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가 되고 전적(典籍)을 거쳐 1587년 전라도 도사(全羅道都事), 이듬해 예조 정랑(禮曹正郞)․호조 정랑(戶曹正郞)․경성 판관(鏡城判官), 1591년 의주 목사(義州牧使)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수도가 함락된 후 전라도 순찰사(全羅道巡察使) 이 광(李 光)과 방어사 곽 영(郭 嶸)4만여 명의 군사를 모집할 때 광주 목사(光州牧 使)로 곽 영의 휘하에 들아가 중위장(中衛將)이 되어 북진, 용인(龍仁)에서 일본군과 싸웠으나 패전 했다.

광주(光州)로 되돌아가 남원(南原)에 주둔, 1천여명의 의용군을 모집하여 다시 북진, 금산군(錦山郡) 이치(李峙)에서 고바야까와(小早川隆景)의 정예부대를 대파하고 전라도 순찰사(全羅道巡察使)에 승진했다.

정병 8천 명을 인솔, 병마절도사 선거이(宣居怡)를 부사령관으로 삼아 서울로 진격하던 도중 수원(水原) 독왕산성(禿旺山城)에 주둔, 견고한 진지를 구축, 지구전(持久戰)과 유격전을 전개하며 우끼다(宇喜多秀家) 부대의 공격을 받았으나 이를 격퇴했다.

1593년 병력을 나누어 선거이에게 시흥(始興) 금주산(衿州山)에 진을 치게 한 후 28백의 병력을 이끌고 한강을 건너 행주산성(幸州山城)에 주둔, 3만의 대군으로 공격해 온 고바야까와의 일본군을 맞아 2 4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게 하고 격퇴하였다.

전공으로 도원수(都元帥)에 올랐다가 도망병을 즉결처분한 죄로 해직되었으나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으로 재기용되어 비변사 당상(備邊司堂上)을 겸직, 1596년 충청도 순찰사에 이어 다시 도원수가 되었다.

1599(선조32) 노환으로 관직을 사임, 고향에 돌아갔다. 죽은 뒤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 1604(선조37)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에 영가부원군(永嘉部院君)으로 추봉(追封)되었으며, 기공사(紀功祠)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