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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권씨] 권근(權 近)

작성일 : 2017-06-12 13:54

1352 (공민왕 1) 1409 (태종 9)  초명은 진(), 자는 가원(可遠)․사숙 (思叔), 호는 양촌(陽村), 시호(諡號)는 문충(文忠), 검교정승(檢校政丞) ()의 아들. 1367(공민왕 16) 성균시(成均試)를 거쳐 이듬해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춘추 관 검열(春秋館檢閱)이 되고, 우왕(禑王) 때 예문관 응교(藝文館應敎)․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예의 판서(禮儀判書)등을 역임했다.

창왕(昌王) 때 좌대언(左代言)․지신사(知申事)를 거쳐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창왕의 친조(親朝)를 요청했으나 허락을 얻지 못하고 돌아왔다.

1375(우왕 1) 박상충(朴尙衷)․정도전(鄭道傳)․정몽주(鄭夢周)와 같이 친명정책(親明政策)을 주장하여 원나라 사절(使節)의 영접을 반대했고, 1389(창왕 1) 윤승순(尹承順)의 부사(副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올 때 가져온 예부(禮部)의 자문(咨文)이 화인(禍因)이 되어 우봉(牛峰)에 유배되었다가 영해(寧海)․흥해(興海)․김해(金海) 등지로 이배(移配)되었다.

1390(공양왕 1) 이 초(彝 初)의 옥에 연루(連累)되어 또다시 청주(淸州)에 옮겨졌다가 풀려 나와 조선이 개국되자 1393(태조2) 예문춘추관 학사(藝文春秋館學士)․대사성(大司成)․중추원사(中樞院使) 등을 역임하고, 1396년 표전문제(表箋問題)가 일어나자 자청하여 명나라에 들어가 두 나라의 관계를 호전시켰으나 정도전 일파의 시기(猜忌)를 받아서 불안한 위치에 있었다.

1398년 제 1차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 일파가 숙청되자 정당문학(政堂文學)․참찬 문하부사(參贊門下府使)․대사헌(大司憲)을 지내고, 사병(私兵) 폐지를 주장하여 왕권 확립에 큰 공을 세웠다.

1401(태종 1)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으로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대사성(大司成)․의정부찬성사(議政府贊成事)․세자 좌빈객(世子左賓客)․이사(貳師) 등을 역임, 왕명으로「동국사략(東國史略)」을 찬()했다.

문장에 뛰어났으며, 경학(經學)에도 밝아 사서오경(四書五經) 구결을 정했다.

또한 그의「입학도설(入學圖說)」은 후일 이 황(李 滉)․장현광(張顯光) 등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성리학자(性理學者)이면서도 문학을 존중하여 시부사장(時賦詞 章)의 학을 실용면에서 중시하고 이를 장려, 경학(經學)과 문학의 양면을 조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