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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권씨] 권왕후(權王煦)

작성일 : 2017-06-12 13:02

1296 (충렬왕 22) 1349 (충정왕 1)  본명은 권 재(權 載), 시호(諡號)는 정헌(正獻), 정부 부()의 아들. 충선왕(忠宣 王)의 신임을 받은 형 준()의 덕분으로 낭장(郎將)에 오르고 일약 삼사 판관(三司判官)에 특진되었다.

충선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 불려 가서 아들로 입적, 왕후라는 성명을 하사(下賜) 받았으며, 1308년 충렬왕의 죽음으로 충선왕과 함께 귀국하여 사복시 부정(司僕寺副正)․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등을 역임했다.

1314(충숙왕 1)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에 봉해지고 1316년 부원대군(府院大君)에 진봉, 왕제(王弟)라고까지 불리웠다.

1320(충숙왕 7) 충선왕과 함께 다시 원나라에 가서 충선왕의 요청으로 원나라 황제로부터 원나라 황태자(皇太子)의 시그루치(速古赤 : 시자)가 되고 계림군공(鷄林 郡公)의 직위와 땅․집을 하사 받았고, 이 해 환관(宦官) 바앤투그스(伯顔禿古思)의 모함으로 티벳(西藏)으로 귀양가게 된 충선왕을 대신하여 가겠다고 청함으로써 황제를 감동케 하였다.

1342(충혜왕 복위 3) 원나라에 가서 서거한지 오래된 충선왕의 시호와 충숙왕의 시호를 받아 가지고 돌아왔으며, 1344(충혜왕 5) 성절사(聖節使)로 또다시 원 나라에 다녀왔다. 이해 우정승(右政丞)에 기용되고, 이듬해 정방(政房)을 폐하고 과전(科田)을 복구했다가 탐학한 무리들의 미움을 받아 파직되었다.

1347년 원나라 황제의 입조(入朝) 명령을 받고 들어가 좌정승 김영돈(金永旽)과 함께 조칙(詔勅)을 가지고 돌아와서 정치 도감(整治都監)을 설치하였고, 영돈과 함께 판사(判事)가 되어 전제(田制)를 정비하였다.

이때 기황후(奇皇后)의 친척인 기삼만(奇三萬)이 기황후의 세력을 믿고 남의 땅을 빼앗는 등 불법을 자행하자 그를 순군옥(巡軍獄)에 가둔 것이 옥사하여 문제가 일어났고, 이어 영도첨의사사(領都僉議司事)에 올랐다.

이듬해 정승이 되어 기 철(奇 轍)과 함 께 정동성(征東省)의 일을 섭행(攝行)했으며, 1349(충정왕 1) 성절사(聖節使)로 원나라에 다녀오던 중 창의현(昌義縣)에 이르러 병으로 죽었다. 성격이 강정 장중(剛正莊重)하여 인망이 두터웠다. 공민왕(恭愍王)의 묘정(廟廷)에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