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조상님

錦山 名妓 일타홍의 뒷바라지로 정승에 오른 일송상공(一松相公) 심희수(沈喜壽)

작성일 : 2019-06-03 10:09 수정일 : 2019-06-03 10:54

▶---명문가 출신이면서도 일찍이 부친을 여인 심희수는 난봉도령이었다. 금산 명기 일타홍이 첫눈에 큰 인물임을 알아차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입신양명의 길을 닦는다. 재상의 반열에 오른 일송상공 앞길을 위해 먼저 이승을 떠났다는 그녀의 이야기가 새롭다. ---◀

일송상공 심희수(沈喜壽)는 조선조 명조 3년(1548 戊申年) 태어나서, 광해군 14년( (1622 壬戌年)에 별세했다. 조선 선조조의 상신으로 字는 백구(伯懼), 호는 일송(一松), 시호는 문정(文貞) 본관은 청송(靑松).

沈喜壽 肖像(차종손댁 보존본)朝鮮 <17세기 초> 비단에 채색

기증 심상필(沈相弼) 크기178.0x103.5cm

승문원 정자 심건(沈鍵)에 아들이다.

일찍 관례를 치르고 노수신(盧守愼)의 유배지 진도(珍島)로 따라가 노수신에게 천리학(千里學)을 배웠으며, 21세 때에 성균관에 들어갔다. 이때 퇴계 이황(退溪 李滉)이 죽자 성균관에서 沈喜壽를 제관으로 보냈다.

1572년(宣祖 5)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보직되고, 호당(湖當)에 뽑혔으며 1589년 헌납(獻納)으로 있을 때 정여립(鄭汝立)의 옥사가 일어나자 조정에서 의견이 맞지 않아서 한때 사임했다. 이듬해 부응교가 되고 응교 선위사를 거쳐 간관(諫官)으로서 수차 직언을 하여 선조의 비위에 거슬려 성균 사성으로 전임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때 용만(龍灣)으로 왕을 모시고 가 도승지에 승진 후 대사헌이 되었다. 그때 명나라 조사(詔使)가 오자 중국어에 능통한 심희수가 그들을 영접하였고, 형조판서(刑曹判書)에 올라 호조판서(戶曹判書)로 전임됐을 때 명나라 경략(經略) 송응창(宋應昌)의 접반사(接伴使)가 되어 난으로 황폐한 관서 지방에 일송 상공을 모신
많은 백성을 구제하였고, 이조판서(吏曹判書)와  양관 대제학(大提學)을 겸임 문형(文衡)을 맡았으며 左 右 찬성으로 있다가 우의정(右議政)에 올랐다.

심희수의 글씨

그 후 좌의정(左議政)으로 있을 때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이이첨(李爾瞻)등이 국권을 좌우하여 임해군(臨海君)을 해하려 함에 그의 부당함을 상소하니 간신들의 탄핵을 받고 조정의 기강이 나날이 어지러워지니 병을 이유로 사임을 청했다. 광해군은 허락지 않고 좌의정 이학복(李鶴福)을 시켜 강제로 출사케 했으며 1614년 옥사가 일어나 부원군 김제남(金悌男)은 이미 죽고 이이첨 등이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옥사에 주모자로 해치려 함에 이덕형(李德響)과 같이 그에 반대하여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무렵 정온(鄭蘊)이 영창대군의 사죄를 상소하다 광해군에 분노를 사서 죽게 되었으므로 심희수(沈喜壽)는 또 상소하여 그를 구출해 귀양으로 끝냈다.

그 후 영돈영 부사가 되고 1616년(光海君 8)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온 허균(許筠)을 비롯한 사람들이 논쟁 끝에 인목대비를 폐출하려는 폐모론이 다시 일어나자 공은 이듬해 사임하고 둔지산에 들어가 주역(周易)을 읽고 시(詩)를 지으며 지조를 지켰다. 청빈한 생활을 지속하시어 청백리(淸白吏)에 책록 되시고 문정(文貞)이란 시호(諡號)가 내렸다. 일송사옥은 경북 상주시 화서면 사산리 봉산서원(鳳山書院)에 제향 되었다.

일송 상공을 모신 경북 상주시 화서면 봉산서원

한편 관동은 성균관(成均館)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지금 명륜동 3가 15번지에 숭보사(崇報社)라는 생사당(生祠堂)이 있다.

그리고 1606년 성균관 유생과 관사람을 모략하는 투서가 있을 때 일송상공 심희수(沈喜壽)선생이 이조판서(吏曹判書)로서 선조에게 간곡히 아뢰어 그 일을 무사히 넘기도록 하였으므로 성균관 사람들은 일송공께 고마움을 갚기 위하여 마을 한 가운데 생사당을 짓고 일송상공의 제사를 지낸 곳이다.

배위는 광주노씨(廣州盧氏) 노극신의 따님과 슬하에 소생은 一子를 두셨다. 一松 상공 영정각(影幀각)이 충북 음성군 감곡면 오궁리에 있었는데, 지금은 묘하 종손댁에 모셔져 있다.

묘소는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 선영하에 9세조 효창공 10세조 정자공 11세 일송상공11세 점정공 12세 부총관공 12세 온양공 13세 집의공 이하 여러분이 계신다.

금산 명기 일타홍과 일송상공 심희수 사랑이야기

명기열전에 나오는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하면, 일송상공께서 입신양명한 것은 오로지 일타홍의 뒷바라지 공덕임을 모두 알고 있지만 일타홍은 또다시 일송상공을 노수신의 따님과 정혼을 하도록 하였고, 하방천기인 자신의 신분 때문에 자결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에 일송상공은 미친 사람처럼 큰소리로 외치며 한없이 통곡하였다. 이제는 그 태산 같은 은혜를 만분의 일이나마 보답하리라 생각하고 있는 차에 일타홍(一朶紅)이 어이없게도 영원불귀의 나그네가 되었으니 유유창천(悠悠蒼天)에 그 한이 망극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사자(死者)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법. 일송상공께서는 며칠을 두고 망극해 하다가 마침내 일타홍을 경기도 고양(高陽)땅에 있는 선영(先塋)에 묻기로 하고 유해를 고양으로 운구하기로 하였다.

하방천기인 일타홍을 명문대가의 선영에 묻는다는 것은 법도에 벗어나는 일이었으나 심씨 가문이 부흥하게 된 공로가 오로지 일타홍에게 있었기 때문에 법도를 초월해서 조상과 함께 모실 결심이 있었던 것이다.

때는 마침 소슬바람 불어오는 초가을 이었다. 일송공께서는 유해를 모시고 금산을 떠나 공주 근처의 금강에 이르렀는데, 가을비는 솔솔내려 사람의 슬픔을 한층 더 북돋아 주었다. 그런데 떠나려 하니 상여가 움직이지 않았다. 상여 채를 부둥켜 잡고 다음과 같은 만장(挽章)시를 지어 읊으니 상여가 움직였다고 전해진다.

 

일타홍의 시

亭亭新月最分明(정정신월최분명)

우뚝 솟은 초승달 오늘 따라 밝고

一片金光萬告情(일편금강만고정)

한 조각 달빛 만고에 정다워라.

無限世間今夜望(무한세간금야망)

넓고 넓은 세상 오늘 밤 달을 보며

百年憂樂幾人情(백년우락기인정)

백년의 슬픔과 즐거움을 느끼는 이 몇일까

 

심희수의 만장 시

一朶紅葩載輀車(일타홍파재이거)

한 떨기 고운 꽃이 상여에 실려

芳魂何事去躊躇(방혼하사거주저)

향기로운 혼이 가는 곳 더디기만 하네.

錦江秋雨丹旌濕(금강추우단정습)

금강에 가을비 내려 붉은 명정 적시니

疑是佳人別淚餘(의시가인별루여)

그리운 내 임의 눈물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