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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최씨] 최무선(崔茂宣)

작성일 : 2019-11-20 11:10

고려시대, 왜구(倭寇)를 무찌르는데는 화양병기를 사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한 최무선은 우왕2년(1376년) 원(元)나라 염초장(焰硝匠) 이원(李元)을 만나 자기집에 머무르게 하고 화약 제조법을 배웠다. 이원이 떠나고 난 뒤 화약실험을 실시하여 몇번 실패하다가 끝내 성공하고 뒤에 조정에 건의하여 우왕3년(1377년) 화통도감(火㷁都監)을 설치케 하고 그 제조(提調)가 되어 화약을 만드는 동시에 대장군포, 이장군포, 삼장군포, 육화포(六花砲), 석포(石砲), 신포(信砲), 화통(火㷁), 화전(火箭), 철령전(鐵翎箭) 등 각정 대포 화기를 제조했고, 또한 이란 화기를 실을 수 있는 전함(戰艦)을 대량 건조했다. 우왕 6년(1380년) 진포(鎭浦: 지금의 群山)에 왜구가 대거 침입하자 부원수(副元帥)가 되어 상원수(上元帥) 나세(羅世)와 함께 고려 수군함대 100여척을 이끌고 돌진하여 세계 해전사상 처음으로 스장시켜 버렸다. 이 공으로 순성익찬공신(純誠翊贊功臣)과 영성군(永城君)에 봉해지고 광정대부검교문하부사 삼중대광(匡靖大夫檢校門下府事三重大匡)이 되었다. 그 후에도 누차 왜구의 격파에 공을 세우고 조선 개국후 이성계(李成桂: 太祖)가 정헌대부검교참찬문합주사겸 판군기시사(正憲大夫檢校參贊門下府事兼 判軍器寺事)를 제수하고 태종은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좌의정(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左議政)을 추증하고 영성부원군(永城府院君)에 추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