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9-08-29 13:00 수정일 : 2019-08-29 13:02
1561(명종 16)~1611(광해군 3) 자(字)는 화백(和伯), 호(號)는 한천(寒泉), 우의정(右議政) 언신(彦 信)의 아들. 1585년(선조 18)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1588년 식년문 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검열(檢閱)․정자(正字)를 지냈다. 1589년 아버지가 기축옥사(己丑獄事)에 연루, 남해(南海)의 유배지(流 配地)에서 죽은 뒤로는 미관말직(微官末職)에 전전하다 1599년 아버 지가 신원(伸寃)되자 검상(檢詳)에 기용되었다.
이때부터 세자시강원 보덕(世子侍講院輔德)․수찬(修撰)․헌납(獻 納)․장령(掌令)․사인(舍人) 등을 거쳐 교리(校理)․사간(司諫)․응 교(應敎)․사예(司藝) 등을 역임, 1605년(선조 38) 동지부사(冬至副 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대사간(大司諫) 등을 지내고 1608년(광해군 즉위) 이조 참판(吏曹參 判)․부제학(副提學)․대사헌(大司憲), 1610년 부빈객(副賓客), 이듬해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 1611년 예조 참판(禮曹參判)이 되었다.
문장에 능하여 앞서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역대 실록(實錄)을 중간 (重刊)할 때는 편수관(編修官)으로 참여했다. 시주(詩酒)를 즐기고 노소현우(老少賢愚)를 가리지 않고 교유(交遊)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