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9(명종 14)~1597(선조 30) 자(字)는 사중(士重), 호(號)는 현산(見山), 시호(諡號)는 충의(忠 毅), 별좌(別坐) 상신(象信)의 아들. 1585년(선조 18) 식년문과(式年文 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호조(戶曹)․형조(刑曹)․공조 좌랑(工曹佐 郞) 등을 지내고, 1592년 임진왜란 중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 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와 1594년 현감(縣監)을 거쳐 병조 정랑(兵曹 正郞)이 되었으며, 1596년 고급주문사(告急奏聞使)가 되어 다시 명나 라에 다녀왔다.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명나라 총병(總兵) 양 원(楊 元)의 접반사(接接使)로 남원(南原)에 갔다가 남원성이 함락될때 양 원과 함께 전사했다. 문장에 뛰어나고 글씨를 잘 썼다. 1604년(선조 37) 선무3등공신(宣武三等功臣)에 책록(策錄)되고, 내성군(萊城君)으로 추 봉(追封), 남원(南原)의 충렬사(忠烈祠)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