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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최씨] 최윤덕(崔潤德)

작성일 : 2019-07-19 12:12

1376(우왕 2)~1445(세종 27) 자(字)는 백수(伯修)․여화(汝和), 호(號)는 임곡, 시호(諡號)는 정렬(貞烈),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운해(雲海)의 아들. 음보(陰補)로 기용되어 아버지를 따라 여러 싸움에서 전공을 세워 부사직(副司直)이 되었다. 1402년(태종 2) 낭장(郎將)․호군(護軍)을 거쳐 이듬해 대호군(大護軍)이 되고, 1406년 지태안 군사(知泰安郡事)로 나갔다가 1410년(태종 10) 무과(武科)에 급제, 상호군(上護軍)․동북면 조전병마사(東北面助戰兵馬使)가 되었다.

이듬해 우군 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를 거쳐 1413년 경성등처 절제사(鏡城等處節制使)로 나가 동맹가티무르를 복속(服屬)시킴으로써 야인(野人)들의 준동을 막았고, 영길도 도순문찰리사(永吉道都巡問察理使)․우군 총제(右軍摠制)․중군 도총제(中軍都摠制)를 역임했다.

1419년(세종 1)에 의정부 참찬(議政府參贊)으로서 삼군 도통사(三軍都統使)가 되어 체찰사(體察使) 이종무(李從茂)와 함께 쓰시마도를 정벌하고, 1421년 공조 판서가 되어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평안도 도절제사(平安道都節制使)가 되었다. 1426년 좌군 도총제부사(左軍都摠制府事), 1428년 병조 판서를 역임, 1433년(세종 15)파저강(婆猪江)의 야인(野人) 이만주(李萬住)가 여연(閭延)에 침입하자 평안도 도절제사(都節制使)가 되어 이를 대파, 그 공으로 우의정(右議政)에 특진되었다.

이듬해 적이 변방을 침입하자 평안도 도안무찰리사(平安道都安撫察理使)로 나가 이를 진압, 돌아와 무관으로서 재상의 지위에 있을 수 없음을 상소, 무관직에의 전임을 요구했으나 허락되지 않고 1435년 좌의정으로 승진했으며, 이듬해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에 전임하고, 1445년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활을 잘 쏘았다. 세종(世宗)의묘정(廟廷)에 배향(配享), 통천(通川)의 상렬사(尙烈祠)와 안주(安州)의 청천사(淸川祠)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