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찾기

조상찾기

HOME > 조상찾기

[풍산심씨] 심구령(沈龜齡)

작성일 : 2018-08-29 14:27

1350(충정왕 2)~1413년((태종 13). 자(字)는 천석(天錫), 호(號)는 병담(屛潭), 시호(諡號)는 정양(靖襄). 1398년(태조 7) 대장군(大將軍)으로 제1차 왕자의 난 때 방원(芳遠)을 도와 박원길(朴元吉) ‧ 정도전(鄭道傳)등을 제거하는데 참여했다.

1400년(정종 2) 제2차 왕자의 난에도 방원에게 가담하여 공을 세워 1401년(태종 1)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에 풍천군(豐川君)으로 봉해지고, 1406년 중군동지총제(中軍同知摠制)를 거쳐, 1408년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가 되었다. 이해 5월 남해안에 왜구(倭寇)가 침입하자 도체찰사(都體察使) 박자안(朴子安)의 조전절제사(助戰節制使)로 출전하여 전라도 연안에서 왜구를 격파하여 전과를 올렸다.

1409년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와 풍산군(豐山君)에 봉해졌고, 동지의흥부사(同知義興府事), 부진무상호군(副鎭撫上護軍) 등을 역임했다. 이듬해 궁궐 경비를 태만하게 한 죄로 한때 파직되었다가, 1411년 지의흥삼군부사(知義興三軍府使)가 되었다. 이듬해 삼군별시위(三軍別侍衛)가 신설되자 별시위일번절제사(別侍衛一番節制使)가 되고 예조판서공안부사(禮曹判書恭安府事)를 지냈다. 卒한 후 상중(喪中)에, 국왕(國王)이 제관(祭官)을 보내 치제(致祭)하고 3일 동안 조회(朝會)를 물리쳤으며, 왕비와 왕세자가 영전(靈前)까지 오시여 치전(致奠)하였다.

구령(龜齡)은 유년(幼年)에 부친(父親)을 따라서 남원부 금안방(南原府 金岸坊)에 거처할 때 역행효제(力行孝悌)하고 삼년여막거상(三年廬幕居喪)하므로 서 효자 댁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이로부터 택촌(宅村)이란 명칭이 생겨 육백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검천리에 산소, 충남 아산시 선장면 신성리에 부조묘(不祧廟)가 있다.